이 이야기가 과연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나 사적이고, 또 사소하게만 여겨졌다. 그 의심은 깊이 내면화되어서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
제62회 한국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 수상작인 권정민 작가의 그림책 ‘엄마 도감’(웅진주니어)은 세상에 못 나올 뻔했다. 아이의 시점으로 엄마를 연구하고 기록한 이 책은 실제로 아이의 출생과 동시에 ‘엄마로 태어난’ 권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아이를 출산한 것은 2014년이고, 첫 스케치는 2017년에 그렸지만 정작 책은 2021년이 돼서야 출간됐다. 다른 책들을 내는 동안에도 ‘엄마 도감’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없었다.
26일 오후 7시 화상(줌·zoom)으로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북콘서트에서 권 작가는 “‘엄마’라는 글감이 책이라는 공적인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사사로운 글감처럼 여겨졌다”고 말했다.
이전 책들과 달리 작가 자신을 글감으로 삼아야 했기에 작업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요소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는 작업 중에도 계속 엄마라는 정체성을 떠올려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권 작가는 “어렵게 작업실을 구해서 겨우 몇 시간 작업할 수 있게 됐는데, 그 작업 중에도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떠올려야만 했다”고 말했다.
책이 ‘엄마의 어리광’처럼 읽히진 않을까 싶은 걱정도 있었다. “아이는 작고 약하니까 당연히 엄마가 돌봐야 하는 존재인 건데, 이 책을 쓰는 것이 혹시 그런 의무를 다하지 않고 어리광을 부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내면의 꾸짖음"이 자꾸만 들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취약하고 힘들었던 시기를 한번쯤은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작업을 하며 “내가 24시간을 바쳐서 하지만 아무에게도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 이 '엄마라는' 일이 결코 사사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나 사적이어서 과연 이런 얘기를 해도 될까 싶었지만, 실은 나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도감’이라는 형식을 택한 것 역시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관찰이 세상에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도감이라는 게 굉장히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그 대상에 대해 관찰하고 쓰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엄마는 전혀 그런 존재가 아니었어요. 아무도 관찰해주지 않던, 어쩌면 고사리보다 연구가 덜 된 존재가 아닐까 싶었죠. 그래서 도감이라는 형식이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엄마라는 주제를 더 잘 드러내 줄 거라고 봤죠.”
무엇보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여러 사람들이 나도 그랬다며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충분히 책으로 말해도 되는 주제라는 확신이 들었다. “엄마라는 존재 역시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이고, 잘 살고 싶어 하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싶어하는 한 인간이라는 놀라운 사실이 세상에 더욱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