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기도 좋기도, 다행이기도 불행이기도 한 ‘집’에 관한 이야기

입력
2022.01.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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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소설 '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우리 시대 가장 ‘뜨거운’ 소설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외려 이야기의 ‘평범함’에 그 이유가 있었다. 그 시절 가장 흔한 이름을 가진 ‘김지영’이라는 여성의 일생을 그린 이 소설이 우리의 현실이 아닐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보다는 르포르타주에 가깝다는 평가 역시 결국 소설 속 이야기가 정확히 지금 한국 여성의 현실이라는 방증일 뿐이다.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페미니즘을 한국 사회 가장 주요한 화두로 이끈 작가의 시선이 아파트에 가 닿았다는 것은 이 주제가 지금 한국 사회의 끓는점이라는 뜻이다. 신작 ‘서영동 이야기’는 가상의 지역 서영동을 중심으로 한 연작소설이다. 각기 다른 욕망과 계급의 서영동 주민들이 주인공인 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소설 속 가상의 동네 서영동은 “들어오고 싶은 욕망과 나가고 싶은 욕망이 섞여 부글부글 끓는 곳”이다. 지하철역 가깝고, 강남 종로 마포 어디로도 잘 연결되고, 도보로 이용 가능한 백화점이 두 군데, 대형마트도 두 군데나 있다. 학군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 그런 것에 비해 아파트 시세는 이른바 ‘마용성’ ‘노도강’에 한참 못 미친다. 동네의 가치가 ‘살기 좋은 곳’이 아닌 ‘아파트 가격’으로 매겨질 때, 주민의 행복 역시 아파트 가격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서영동 안에서도 계급은 아파트로 나뉜다. 대기업에 다니는 유정은 결혼할 때 시댁에서 서영동에서 가장 비싼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노블엔을 마련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인근 서영동 우성아파트에 경비원으로 취직하며 유정은 복잡한 심경에 휩싸인다. 아버지가 아파트 주민들의 각종 갑질에 시달리는 것을 보지만, 남편에게는 그것을 털어놓지 못한다.


아파트는 이중적인 욕망이 충돌하는 곳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보미는 아버지가 마련해준 아파트에 살지만 “아파트는 그저 집”이고 “고향이고 추억이고 지금 사는 곳, 그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아버지는 부동산 투기로 돈을 굴린 개발 시대의 수혜자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가 아파트를 딸인 자신이 아닌 남동생에게 증여한다고 하자 화가 난다.

물론 그런 아파트마저도, 아파트 바깥에 있는 사람의 시선으로 볼 땐 그저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일 뿐이다. 아파트 상가 학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다세대주택 원룸에 사는 아영에게는 ‘2030 영끌족’이라는 수식도 아득하다. 아영은 “끌어모으면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영혼은 대체 어떤 영혼일까” 자문할 뿐이다.

소설에서 아파트는 인간의 온갖 욕망이 충돌하는 곳이다. 경비원 갑질, 층간 소음, 주민 갈등이 벌어지는 곳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저 월급을 모아서는 결코 이룰 수 없었을 소시민의 ‘내집 마련'의 꿈을 이뤄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시끄러운 윗집과 예민한 아랫집 사이에서 병들어 가는 사이 집값은 계속 올랐다. 이사한 지 1년여 만에 시세는 15억이 되었다. 희진은 집이 좋기도 싫기도 했다. 이 집을 가져서 다행이기도 불행하기도 했다. 행복하기도 우울하기도 했다.”


아파트를 향한 욕망은 무조건 탐욕스럽기만 한 것도, 그렇다고 무조건 정당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이기심은 절박함에서 비롯하기도 해서, “노인이나 어린이, 장애인 시설을 기피하는 이기적인 주민들”이 되고 싶진 않지만 집값이 떨어지면 당장 돌아올 손해를 계산해야 하기에 학원가 앞 요양시설 건설을 반대한다. 자신은 그저 “성실하게 일군 자산을 정당하게 평가받고 싶을 뿐”이라고 정당화하며.

“저는 전세보다는 자가인 게 좋고요, 작은 집보다는 큰 집이 좋아요. 집값 오르는 거 느긋하게 보면서 그때 무리해서 사길 잘했지, 그대 안 샀으면 지금 넓혀 가지도 못했지, 하는 기분도 썩 나쁘지는 않더라고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속물이고 투기꾼이라고 생각하시겠죠? 그래서 말하지는 않으려고요.”

이 진술에서 완전하게 무관한 이들은 없을 것이기에, 익숙하고도 핍진한 욕망의 전시 앞에서 독자는 필연적으로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작가 역시 후기에서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무척 어렵고 괴롭고 부끄러웠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과연 이 욕망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자 얼마나 있겠는가. 이 욕망도, 부끄러움도 모두 우리의 것이니.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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