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공석 주한미국대사에 '대북 제재 전문가' 필립 골드버그 내정

입력
2022.01.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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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끝난 뒤 부임할 듯

1년 넘게 공석인 주한미국대사에 대북제재 활동 이력을 갖춘 필립 골드버그 주콜롬비아대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연초부터 잇단 무력시위로 대미 압박을 강화했지만, 미국은 ‘제재 전문가’를 앞세워 원칙에 입각한 대응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26일 복수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달 골드버그 대사를 주한미국대사로 내정한 뒤 관련 절차를 진행해 왔다. 한국 정부에도 주재국 임명동의(아그레망)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외교 소식통은 “골드버그 대사 지명과 관련한 내부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아그레망에 필요한 절차를 밟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미국의 인사 문제를 발표할 수는 없다”면서도 “현재 내정자가 우리 정부에 통보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국대사 자리는 지난해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과 함께 물러난 해리 해리스 전 대사 이후 1년 넘게 비어 있다.

골드버그 대사는 최종 임명돼도 차기 정부와 호흡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 신임 미국 대사로 임명되려면 아그레망과 백악관의 공식 발표를 거쳐 미 상원 인준 절차까지 통과해야 한다. 아그레망에만 통상 2개월 안팎 소요돼 새 정부가 들어서는 5월 이후에나 부임할 것으로 전망된다.

골드버그 대사는 미 국무부가 베테랑 외교관에게 부여하는 최고위 직급인 ‘경력대사(Career Ambassador)’ 직함을 갖고 있다. 그만큼 능력이 출중하다는 뜻이다. 2019년부터는 콜롬비아 주재 대사직을 수행하고 있다.

다만 ‘강성 외교관’으로 유명하다. 2006~2008년 주볼리비아 대사로 일할 때 좌파 성향의 모랄레스 정권과 내내 각을 세웠고, 당시 볼리비아 전 국방장관의 미국 망명도 주도했다. 그 여파로 현지 정부의 기피인물로 지명돼 추방됐다. 이런 성향 탓에 대북 문제에서도 강경 대응을 선호할 확률이 높다.

실제 대북제재에 깊숙이 관여한 경험도 있다.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기인 2009~2010년 국무부 대북 유엔 제재 이행 조정관을 지내면서 북한의 돈줄 조이기에 적극 나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1874호를 근거로 중국을 몰아세워 북한으로 밀반입되던 전략물자를 틀어막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미국은 제재 과정을 통해 다자간 비핵화 대화에 북한이 돌아오도록 하겠다”는 발언을 할 만큼 제재 신봉자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대결 수위를 계속 높여가는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골드버그 대사를 내정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미국이 정한 ‘레드라인’을 넘는 도발을 북한이 강행할 경우 더 강력한 제재로 응수하겠다는 메시지가 인사에 녹아 있다는 해석도 많다.

김민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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