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비한 병력 증강에 이어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차단 대비책을 서두르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수입하는 가스와 원유의 3분의 1을 공급하는 러시아가 에너지를 압박 수단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러시아는 에너지 무기화를 부인하고 있지만 전쟁 발발 시 유럽 전역에서 에너지 대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25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우리는 북아프리카, 중동, 아시아와 미국 등 러시아 이외 지역에서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가스 물량을 파악하고 있다”며 “각 업체의 여력과 이 물량을 유럽에 팔 의향이 있는지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유럽이 겨울과 봄을 날 수 있도록 충분한 대체 공급망 확보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 언론들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대체 공급 국가 1순위로 꼽았다. 또 노르웨이와 카타르도 후보군에 오르내린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선을 유럽으로 돌리는 방안도 실행되고 있다.
미국이 에너지 공급망을 챙기는 이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할 경우 벌어질 유럽 에너지 부족 사태 때문이다. 러시아가 군사 행동에 나서면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는 군사 대응은 물론 국제 금융결제망 퇴출과 수출통제 같은 러시아 경제제재 압박 카드를 꺼낼 예정이다. 러시아는 여기에 맞서 유럽으로 연결된 가스관을 걸어 잠글 가능성이 높고 한겨울 유럽 국가들이 에너지 공급 부족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EU에서 사용하는 가스 및 원유의 3분의 1이 러시아에서 들어오고 그 물량의 3분의 1은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을 이용한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벨라루스와 폴란드를 거쳐 독일까지 연결되는 가스관을 잠그기도 했다.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하는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상황이 악화할 경우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의도적으로 줄이거나 실제 전투로 각종 설비가 파손돼 가스 공급에 차질을 빚는 사태도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이런 변수 때문에 지난해 8월 1메가와트시(㎽h)당 40유로대였던 가스 가격은 급등세다. 24일 기준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하루 전에 비해 15.3%(12.06유로) 치솟은 92.04유로에 달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위기가 고조될수록 가격이 오르는 구조다.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50%에 이르는 독일은 지난달부터 에너지 가격이 1년 전 대비 60%나 뛰어오르기도 했다. 러시아산 가스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나토 회원국들을 분열시킬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완전히 차단하면 유럽에선 가격이 10배 이상 폭등하고 한겨울 수백만 명이 한파에 시달릴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물론 러시아는 에너지 무기화 가능성을 부인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러시아의 가스 공급 신뢰성을 의심받을 어떠한 이유도 제시한 적 없다”라고 밝혔다. 반면 니콜라이 주라블레프 러시아 연방 상원의원은 타스통신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국제결제시스템에서 차단될 경우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로부터 가스, 석유, 금속을 공급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제재할 수 있다는 경고장도 날렸다. 또 배치 준비 지시를 내렸던 미군 8,500명 중 일부가 가까운 시일 내에 동유럽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해당 병력의 우크라이나 직접 배치는 없을 것이라고 확인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24일 미 CNN 인터뷰에서 나토가 우크라이나 위기 해소 방안을 러시아에 문서로 제시할 것이라고 밝혀 러시아의 반응이 주목된다. 러시아는 나토 동진 중단을 요구하며 안보 관련 문서 보장을 요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