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틱톡에 올라온 7초 길이의 영상이 화제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고지대 마을의 미소’라는 태그가 달렸다. 순식간에 25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리탕(理塘)의 해발 4,000m 고원에 사는 스물두 살 청년 딩전은 일약 스타가 됐다. 리탕은 라싸에서 동쪽으로 1,500㎞ 떨어진 티베트 문화권인 캄(Kham) 지역이다. 청두에서 550㎞ 떨어진 쓰촨성 서부다. 여행자는 동티베트라 부른다. 딩전은 이 영상 덕분에 연예인이 됐다. 한 방송국에 나와 노래를 불렀다. 달라이라마 6세가 지은 시다. 티베트 말로 부른다.
“순결한 선학이여, 날개를 빌려 다오. 너무 멀리 날아오르지 않으리, 그저 리탕에 가서 놀다 오리라.”
달라이라마 6세 창양갸초(倉央嘉措·Tshangs dbYangs rGya mTsho)는 리탕에 간 적이 없다. 연인의 고향이라는 말이 있는데 근거는 희박하다. 청나라 조정의 호출을 받고 이동 중에 행방이 사라지자 내분이 일었다. 달라이라마를 참칭하는 기간이 13년이었다.
시가 예언은 아니었다. ‘선학을 타고 인도에 가서 부처를 만나고 돌아오고 싶다’는 대목도 있다. 시가 예언이 됐다. 리탕에서 환생을 증명해 후세로 판명되는 전세영동(轉世靈童)이 나타났다. 라싸로 와서 교육을 받은 후 달라이라마를 계승했다. 7세 깰상갸초(格桑嘉措·bsKal bZang rGya mTsho)의 등장으로 정통성을 회복했다. 여름이 오면 노블링카(羅布林卡·Norbuglingkha)에서 지냈다. 포탈라궁 서쪽, 걸어서 30분 거리다.
노블링카는 ‘보물 원림(園林)’이란 뜻이다. 하천이 흐르고 숲이 우거진 청정 지역이다. 푸른 나무 사이로 주민들이 참배를 가고 있다. 보드라운 잔디가 깔린 공원이다. 알록달록한 꽃도 많다. 양지 바른 벤치에서 낮잠을 자도 될 정도로 조용하다. 물론 관광객이 없다면 말이다. 베이징의 이화원과 비슷하다 자랑한다. 아무리 봐도 분위기는 오히려 청더의 피서산장과 닮았다. 웅장하지 않고 소박한 편이다.
7세 달라이라마 깰상갸초는 잔병이 많았다. 다리 질환도 앓았다. 자주 포탈라궁을 나와 하천에서 다리를 씻고 휴식했다. 청나라가 파견한 주장(駐藏) 대신이 천막을 세웠다. 청나라 황제도 여름 궁전인 피서산장에서 업무를 보던 시절이었다. 1750년대에 3층 건물을 짓고 상주했다. 깰상포당(格桑頗章)이라 불렀다. 포당(Podrang·ཕོ་བྲང་)은 궁전이다. 청나라는 현걸궁(賢傑宮)이라 불렀다. 달라이라마들이 좋아해 포당이 자꾸 늘어났다. 8세 두진(準增)부터 13세 짼살(金色)까지 곳곳에 많다. 날씨가 좋아 담장과 건물 모두 산뜻하다. 노랑과 빨강, 하늘과 나무가 잘 어울린다.
담장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2층 건물이 나타난다. 분수가 솟고 화분이 둥글게 두르고 있다. 1956년에 준공했으니 달라이라마 14세가 집정하던 신중국 시대다. 딱딴미규르(達旦明久·Taktenmigyur) 포당이다. 이름에 다른 뜻이라도 있는 걸까? 촬영이 금지돼 있다.
보좌가 놓인 강당을 지난다. 불상의 그림자나 탕카의 명암 어디에도 주인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복도를 따라 스치듯 침실을 바라본다. 당시 사용하던 라디오에도 생기는 없다. 20세기 초 청나라 왕조가 무너지자 수백 년 동안 염원하던 독립을 추진한다. 세계정세는 간단하지 않았다. 마오쩌둥 정부와 협정을 맺고 자치를 추구했다. 1959년 라싸 봉기 후 14세는 인도로 피신했다. 딱딴미규르는 ‘영구히 불변’이란 말이다. 참 허망한 작명이었다.
달라이라마 후계자는 이상하게 라싸가 아닌 먼 지방에서 출현했다. 대부분 그렇다. 14세도 티베트 문화권인 암도(Amdo)의 변방에서 태어났다. 라싸에서 2,000㎞ 떨어진 칭하이성 딱체르(Taktser)다. 중국 지명 훙예촌(紅崖村)만 남았다. 고속도로에서 빠지면 불과 10㎞ 거리다. 황하 상류와 가깝고 단하 지형이 줄줄이 이어지는 산골이다. 그의 출생을 기념하는 관광지가 있을까. 늘 궁금하다.
달라이라마 14세는 1935년 7월, 평범한 농부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라모(Lhamo)라 불렀다. 티베트 사람들은 서너 살 이전까지 전생의 기억을 지닌다고 믿는다. 전세영동의 신비는 종교다. 그래서 머릿속에만 머문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1997년 영화 ‘쿤둔(Kundun)’을 통해 감상으로 느낄 뿐이다.
라모는 달라이라마 13세가 사용하던 물건을 정확하게 찾는다. 촬영지는 실제 출생지가 아니다. 인도 어딘가 분위기 비슷한 장소를 찾느라 애를 썼다. ‘쿤둔’은 고귀한 존재라는 뜻인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심오한 뉘앙스를 품고 있다. 티베트 발음은 ‘꾼뒨(སྐུ་མདུན་)’이다. 법명은 땐진갸초(丹增嘉措·bsTan dZin rGya mTsho)다. 포당을 다 둘러보고 나와도 그의 흔적은 없다. 지붕 위 법륜과 두 마리 사슴만이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다.
두 무릎 꿇고 오른손으로 땅을 짚는다. 왼손과 함께 이마를 바닥에 댄다. 손바닥은 하늘로 향하고 잠시 멈춘 후 일어나서 반복한다. 오체투지다. 한두 번도 아니고 셀 수 없이 여러 번이다. 한 곳에서만 아니라 길을 걸으면서도 한다. 108배만 해도 쉽지 않다. 얼마나 염원이 많길래 그럴까.
종교는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다. 아들과 딸을 데리고 오체투지 중인 아주머니가 있다. 비가 살짝 내린다. 바닥이 괜찮은 편이라 다행이다. 아이들은 푼돈이 쌓이는 배낭을 메고 있다. 감상에 젖기 쉬운 진풍경이 여행객을 부른다. 그래서 티베트다.
환생하려는 기원인가, 행복 추구를 위한 기복인가? 불법승 삼보(三寶)에게 존경을 드러내는 예법이며 탐진치(貪瞋癡)의 본성을 참회하는 수행이라 한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다. 2016년 8월에 방다(邦達) 초원을 지날 때다. 오체투지로 도로를 걷는 사람과 만났다. 거의 1,000㎞ 떨어진 라싸로 간다고 했다. 평생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행보다. 달라이라마도 없는데 왜 가는걸까. 삼보(三步)만큼의 전진이다. 그 끝이 분명 있으련만, 얼마나 가야 하는지 상상이 불가능하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조캉(覺康·Jokhang)이다. 포탈라궁에서 동쪽으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다. ‘조’는 석가모니 불상에 대한 존칭이며 ‘캉’은 불전이다. 덧붙이지 않아도 되는데 조캉 ‘사원’이라 부른다. 중국어로는 밝게 빛나는 소(昭)를 붙여 대소사(大昭寺)라 한다.
7세기 쏭짼감뽀 시절 건축했다. 네팔 공주가 가지고 온 석가모니 8세 등신불을 봉공하기 위해서였다. 곧이어 당나라 공주가 12세 등신불을 가지고 왔다. 북쪽에 사원을 또 준공했다. 라모체(繞木切·Ramoche)이자 소소사다. 당나라가 토번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전쟁터로 변할 위험에 처하자 12세 등신불을 조캉의 비밀 장소에 숨겼다. 수십 년이 흐른 후 토번과 당나라는 두 번째 국혼을 맺어 금성공주(金城公主)가 시집왔다. 등신불이 다시 세상에 나왔다. 이때 조캉에 있던 8세 등신불은 라모체로 옮겼다. 자리를 서로 바꿨다.
영혼이 깃든 공간이다. 순례자에게는 조캉을 찾아 12세 등신불에 예불을 올리는 게 평생소원이다. 오체투지로 머나먼 고행을 하는 까닭이다. 화로에 연기가 솟구치고 있다. 나뭇가지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 ‘옴마니밧메움’ 주문도 읊는다. 그리고 화로에 넣고 태운다. 하늘로 향한 제사다.
연기는 종일 끊임없이 솟는다. 티베트 사원 어디에 가도 늘 만나는 모습이다. 외상(煨桑)이라 부른다. ‘상’은 티베트어에서 청결을 뜻하며 ‘외’는 태운다는 뜻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체투지를 한다. 사원 입구 바닥에서 끝도 없이 예불한다. 신도를 위한 사원이자 관광객을 위한 명소다.
조캉은 4층 건물이다. 1층에 12세 등신불을 비롯해 수많은 불상이 봉공돼 있다. 사람이 많아 꽁무니를 따라 반걸음씩 움직일 뿐이다. 한 사람 겨우 지날 정도로 좁은 불감도 여럿이다.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일이 고행이다. 신도와 관광객이 함께 들락날락한다.
티베트 사람은 진정 어린 눈과 몸짓으로 고개를 숙이며 참배한다. 관광객은 누가 봐도 구경꾼이니 어색한 조화다. 어두침침한 공간에서도 또렷이 보이니 신기하다. 마침 작은 행사가 진행 중이라 관광객이 모두 촬영을 한다. 석가모니 불상이 많이 흔들리는 듯하다. 어둡고 멀었는데도 찬란한 모습이다.
관광객에게는 2층이 낙원이다. 계단으로 오르면 확 트인 공간이 나온다. 붉고 하얀 담장과 도금된 지붕에 파란 하늘과 구름까지 펼쳐지면 기분이 상쾌하다. 하늘과 아주 가까운 느낌이다. 옥상을 한 바퀴 돌아본다. 광장 가운데 오색 천을 두른 룽따(Rlungrta)는 산보다도 높이 솟았다. 멀리 포탈라궁도 보인다. 오체투지하는 신도의 모습도 한눈에 보인다.
건물은 가운데가 텅 빈 상태다. 삼면이 전각이다. 금빛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는 금정(金頂)은 중원과 티베트 양식이 섞인 건축물이다. 두공과 대들보 만드는 당나라 기술과 티베트 문양과 상징이 혼성이다. 혀를 내밀고 코가 유난히 돌출된 오두(鰲頭)가 처마 끝에 달렸다. 하늘로 향해 위세를 부린다.
와당도 티베트만의 색채가 진하다. 이중 처마의 아래쪽 와당이 신기하다. 가부좌의 부처와 불 뿜는 맹수가 교대로 이어진다. 사이사이에 물병, 우산, 물고기, 연꽃, 고둥, 매듭, 휘장, 바퀴가 차례로 새겨져 있다. 불교의 팔보다. 가까이 다가가야 제대로 보인다. 평범한 위쪽 와당에 비해 쉽게 보기 힘든 작품이다. 보물 같은 조각상은 또 있다.
처마 사이에 신비한 조각상이 있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갈 듯한 인면금시조(人面金翅鳥)다. 네 귀퉁이마다 서로 다른 손동작을 취하고 있다. 햇볕을 받아 휘황찬란한 모습이 당장이라도 비상할 태세다.
인도 신화에 등장하며 불경과 함께 티베트에 왔다. 불교 영향을 받은 나라마다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아래층 네 귀퉁이에도 무릎을 꿇고 앉은 사자인 복사(伏獅)가 있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설파하려고 용맹한 사자를 타고 등장한다. 지혜는 단호하다는 듯 사자의 위엄이 사원 구석에서 하늘을 노려보고 있다.
조캉의 담장 따라 골목길이 있다. 사람들이 시계방향으로 돈다. 원통으로 생긴 마니차(Manihkhor)를 돌리거나 오체투지를 한다. 관광객은 그저 따라간다. 꽤 길어서 한 바퀴 도는데 30분 정도 걸린다. 라싸 주민은 아침저녁 일상으로 참배한다.
이 순례의 길을 보통 티베트어로 바코르(བར་སྐོར་)라 부른다. 이를 쪼개 보면 '바(བ)+ㄹ(ར)'과 묵음 처리되는 '싸(ས)', '까(ཀ)+오(자음 위 날개처럼 생긴 문자)+ㄹ(ར)'다. ‘싸까오’ 음가가 그냥 단음인 ‘꼬’가 된다. 동국대 티벳장경연구소의 한글 표기안으로 쓰면 ‘바르꼬르’다. 이를 와일리는 ‘barskor’라 표기했다. 중국어는 바쿼(八廓)다. 다른 나라 말을 저마다의 언어로 표기하기는 참 어렵다.
바코르 동남쪽에 식당이 하나 보인다. 쓰촨라디오방송국의 티베트어 아나운서이자 기자 출신이 1997년 개업했다. 티베트 스타일의 서양식 레스토랑이다. 간판은 '마지아미(瑪吉阿米)'고 외국 관광객을 위해 ‘MAKYE AME’라 썼다. 베이징과 쿤밍, 청두, 리장에도 지점이 있다. 시에 등장하는 말이다.
누가 이런 아름다운 시를 썼을까? 사랑이 주제일까? 마지아미는 도대체 누구인가? 티베트어 간판을 보면 ‘མ་སྐྱེས་ཨ་མ’다. 표기대로 읽으면 ‘마꼐아마’다. 티베트어는 자음과 모음이 위와 아래로 달라붙고 뒤에 이어지는 말이 나온다. 정확한 음가를 위해 점을 찍어 구분한다.
‘마’와 ‘아’는 발음이 비슷한 중국어로 바꿨다. ‘꼐’는 어렵사리 ‘지’라 했을 터다. 그런데 끝의 ‘마’는 왜 ‘미’가 됐을까. 창업자는 티베트 사원에서 티베트어를 배운 적이 있다고 했다. 원문을 보면 ‘~མའི~’로 돼 있다. ‘마꼐아마미’다. ‘미’는 뒤에 나오는 말을 수식하는 ‘~의’로 보인다. ‘마’는 어디로 사라졌나. 작명하기 나름이지만, 티베트어에서는 기본 자음 앞에 나오는 자음은 음가가 거의 사라진다. 물론 방탄소년단(BTS)의 팬클럽 ‘아미’와는 아무 상관없다. 발음도 훨씬 부드럽고 맛깔 난다. 라싸까지 왔으니 낯선 티베트어 맛보기도 그런대로 흥미롭다.
시는 달라이라마 6세의 작품이다. ‘날개를 타고 멀리 날아오르는’ 감수성으로 노래하는 시인이다. 마지아미는 ‘시집가지 않은 소녀’라는 일반 명사다. 그냥 아가씨다. 연인의 이름이 아니다. 청년 달라이라마가 연인에 대한 소회를 시로 썼다는 말인가? 연인은 전설이다. 한용운의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의 님이 아닐까? 나라이자 부처이고 연인이라 해도 좋다. 시가 읽는 이의 마음을 따라가는 노래라면 말이다.
라싸의 하늘이 어두워져도 바코르 순례는 멈추지 않는다. ‘아리따운 티베트 소녀’와 술 한잔 하고 싶어도 언제나 만원이다. 바코르 땅바닥에 앉아 캔맥주를 딴다. “마지아미에게 건배!”라고 조용히 외친다. 여럿이 가도, 혼자서도 마신다. 여행은 공간 이동이지만 마음의 일탈이며 비상이다. 그래서 남다른 추억이 된다. 맥주 한 캔으로도 취기가 오른다. ‘티베트에게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