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고발한 연구서 ‘사람입니다, 고객님’이 이달 출판됐다. 콜센터가 전자 감시 체계와 성과급 체계를 이용해서 상담사에게 과중한 업무를 강요하는 과정이 낱낱이 담겼다. 연구서에 기록된 상담사들은 콜센터가 제시한 과도한 전화량을 채우려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다가 좌절하고 때로는 질병을 얻는다. 그러나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휴식 시간이 늘어나거나 대우가 좋아지거나 인력이 확충되는 일은 없다. ‘상담사는 언제든 쉽게 버려지고 쉽게 뽑을 수 있는 존재, 일회용 배터리’처럼 취급당한다.
연구를 수행한 김관욱 교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인류학자로 2011년부터 콜센터 20여 곳, 상담사 100여 명을 조사했다. 금연상담의사 자격으로 매주 4시간씩 6개월간 정기적으로 콜센터 한 곳에 출입하면서 현장을 직접 관찰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2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연구서를 저술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감정노동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2005년부터 많은 논의가 있었고 2018년에는 감정노동자보호법이 마련됐지만 대기업이나 노동조합이 있는 몇 곳을 빼면 콜센터 상담사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콜센터는 이제까지 감정노동자 보호라는 관점에서 다뤄져 왔지만 상담사를 괴롭히는 근본적 문제는 노동 환경 자체에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홈쇼핑 콜센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콜센터는 달성이 거의 불가능한 업무량을 강요하면서 실시간으로 상담사를 감시하고 통제한다. 상담사들이 쉴 새 없이 전화기에 매달려도 받거나 걸어야 할 ‘콜’은 쌓이기만 한다. 일정 횟수 이상 쌓이면 경고음이 울린다. 간부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서 상담사의 활동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데 상담사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면 직접 찾아나선다. 그 ‘오랫동안’의 기준은 2, 3분이다.
상담사가 휴식은커녕 화장실조차 가기 어려운 노동 환경이다. 일반적으로 콜센터에서 상담사는 하루에 8시간을 근무하고 그 사이에 15분을 쉰다. 상담사가 2분 30초 동안 화장실을 다녀오면 남은 휴게시간은 12분 30초라고 간부의 컴퓨터에 표시된다. 김 교수는 “사람들은 감정노동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착하게 응대하자고 이야기하지만 상담사를 정말 힘들게 만드는 것은 고객이 아니라 노동 환경”이라면서 “단시간에 전화를 최대한 많이 하게 만드는 업무 체계, 동료끼리 경쟁을 붙여서 경주마처럼 목표를 달성하게 만드는 체계, 모든 전화를 녹취해서 평가하고 보상하는 체계, 그러한 평가를 근거로 노동자 일부를 왕따를 만드는 분위기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하청업체들끼리 경쟁하는 산업구조는 감시 체계를 강화하고 책임은 분산시킨다. 김 교수에 따르면 대규모 콜센터들은 하청업체를 3곳 정도 고용하는데 한 곳당 인원이 100~150명에 이른다. 센터장-실장-파트장-선임-상담사로 이뤄진 구조에서 원청의 실적 압박은 아래로 차례로 전달된다. 김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콜센터에서 집단 발병하기 이전에도 상담사들은 불안을 호소했다. 누구도 관리 감독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청은 하청에 개입할 수 없다고 하고 하청은 무시한다. 상담사들이 하소연할 곳이 없다. 참거나 이직할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김 교수는 “연구 과정에서 간부(실장)에게 하루에 받아야 할 콜을 200통으로 정한 이유가 무엇이냐, 그렇게 하면 1초도 화장실에 갈 수가 없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믿을 수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털어놨다. 간부가 “우리 하청업체가 다른 하청업체보다 더 뛰어난 실적을 올릴 수 있는지 실험하려고 아무도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질러봤다”고 대답한 것이다.
이후에 식사를 거르고 생리현상을 참아가면서 목표에 도달한 상담사가 몇 명 생겨나자 목표치는 더욱 높아졌다. 김 교수에 따르면 가장 실적이 높은 S급 상담사가 성과급을 합쳐서 매달 200만 원 정도를 받는다. 기본급이 125만 원에 그치는 상황에서 상담사들은 중노동을 거부하기 어렵다.
콜센터는 흡연율이 높은 직장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금천구가 지난 2013년에 여성 감정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서 콜센터 상담사의 흡연율은 26%에 달했다. 판매직(15%) 전체 평균(9%)보다 훨씬 높았다. 당시 보고된 여성 흡연율(6%)의 4배가 넘는 수치다. 김 교수가 콜센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흡연율이었다. 김 교수는 “과소보고를 감안하면 실제 흡연율은 더욱 높을 것”이라면서 “직접 점검한 결과에 따르면 콜센터 흡연율은 평균적으로 40% 정도이고 소규모 업체에서는 80%까지도 높아진다”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콜센터가 흡연을 노동 효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화장실을 가려고 상담사끼리 눈치싸움까지 벌이는 판국에 흡연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콜센터에서 흡연은 전화하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용인되고 암묵적으로 조장되는 행위다. 담배가 1980년대 공장에서 여공들에게 제공됐던 카페인 각성제와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다. 흡연자들이 콜센터를 찾아서 입사하고 콜센터가 이를 방조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과도한 노동 환경은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한다. 김 교수는 “흡연율을 보고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콜센터가 상담사에게 흡연을 감정적 탈진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권장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의사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콜센터 상담사의 80%가 콜센터에 근무하면서 새로운 질병을 얻었거나 기존에 앓던 질병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혹사를 당하면서 환자의 20%가 정신질환, 50%가 디스크(추간판 탈출증)를 앓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낙상처럼 선후관계가 명확하면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그것도 어렵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콜센터 상담사들은 경력이 없고 전문적 기술이 없기 때문에 대우가 나쁜 일을 할 수밖에 없지 않냐고도 이야기한다. 콜센터 간부들 사이에서도 그런 인식이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기업들이 여성의 노동에 정당한 가치를 지급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공순이’가 받던 대접을 ‘콜순이’가 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10년 사이에 경력 단절 여성들이 콜센터에 뛰어들면서 고학력자와 30, 4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김 교수는 “사회적 인식과 달리 상담사 업무는 굉장히 전문적이다. 단순노동이 아니라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지식정보노동이고 숙련자만 가능하다”면서 “이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합당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전직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들이 이윤을 과도하게 챙기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 교수는 “상담사 업무가 비전문적이어서 임금을 적게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콜센터는 생각보다 작은 업체들이 아니다. 스스로를 ‘콘택트 산업’이라고 하는데 2020년 기준으로 4조 원 규모다. 콜센터들이 수익이 적어서 월급을 적게 주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이익을 내면서도 여성들이 나가지 않기 때문에 그 구조를 유지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콜센터 상담사의 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고 김 교수는 거듭 강조했다. 콜센터의 ‘최첨단 노동 양식’이 다른 노동 현장에서도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지식 정보 산업이 발전하고 디지털 일자리가 무수히 생기더라도 저임금 고강도 노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새롭게 나타난다. 적절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감시와 경쟁이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노동 환경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직종으로 택배원을 꼽았다.
김 교수는 “돈 받고 일하는데 다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냐? 싫으면 다른 직장 가면 되는 것 아냐?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이것이 타인을 돌봐야 할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이 처한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기쁨이 삭제된 노동은 굉장히 불행하다"며 "나는 상담사를 연구했지만 다른 직종 역시 마찬가지 상황에 놓여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자가 이직하거나 전직해도 피할 수 없다고 여기는 비인간적 노동 환경, 끝내 거기에 익숙해져서 ‘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노동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