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간질 말라” 러시아 편들지만…우크라 위기에 속타는 중국

입력
2022.01.25 12:00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날 전쟁
내달 올림픽 앞두고 또다시 전쟁 위기
中, 속 끓지만 맹방 러시아라 냉가슴만
"習, 푸틴에 전쟁 자제 요청" 보도 반박
美 철수에 "EU와  결속 난관 봉착" 역공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 중국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심각한 표정으로 귀엣말을 나누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날 러시아와 조지아 간 남오세티야 전쟁이 시작되면서 지구촌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전쟁은 5일 만에 러시아의 승리로 끝났지만 중국은 쓰린 속을 애써 참아야 했다.

14년이 지나 판박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내달 4일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위기가 일촉즉발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뒤에서 곱씹으며 애를 태우는 건 중국이다. 가뜩이나 올림픽 열기가 미지근한 마당에 초대형 악재를 만났다. 중국은 베이징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서구 국가들의 정부 사절이 불참하는 ‘외교적 보이콧’만으로도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다.


더구나 상대는 맹방 러시아다.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는 미국의 압박에 맞서 중국이 반드시 손을 잡아야 하는 터라 대놓고 어깃장을 놓을 수도 없다. 그 틈을 서구 매체가 파고들었다. 미 블룸버그는 22일(현지시간) “시진핑 주석이 푸틴 대통령에게 베이징올림픽 기간 우크라이나 침공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중국을 우크라이나 사태 한복판으로 끌어들인 셈이다.

실제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되면 △책임을 일부 떠넘겨 중국의 입지를 좁히고 △베이징올림픽에 쏠리는 관심을 차단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에 균열을 내는 일석삼조의 노림수가 엿보인다. 반면 위기가 극적으로 봉합되더라도 중국은 딱히 이득을 볼 게 없어 미국으로서는 꽃놀이패나 마찬가지다.

중국은 발끈하며 반박에 나섰다. 러시아 주재 중국대사관은 즉각 성명을 내고 “날조이고 도발”이라며 강력 부인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사실무근”이라면서 “중러 관계에 대한 모독일 뿐만 아니라 베이징올림픽에 간섭하고 방해하려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는 심지어 “이런 저열한 속임수로 국제사회를 속일 수 없을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를 이간질하거나 상호 신뢰에 흠집을 내려는 어떠한 시도도 소용이 없다”고도 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미국 정보기관의 공작”이라고 가세했다.


중국도 반격의 틈새를 찾았다. 미국과 영국은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 인력을 철수시킨 반면 유럽연합(EU)은 그 같은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점을 물고 늘어졌다. AP통신은 24일 “EU의 모든 회원국이 단결해 있고, 우크라이나 사태에 전례 없는 단합을 보이고 있다”는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의 발언을 전했다. 영국은 2020년 EU에서 탈퇴한 국가다. 이에 글로벌타임스는 25일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EU의 입장과 행동이 미국과는 사뭇 달라 양측의 결속이 난관에 봉착했다”고 지적했다. 서구 국가들의 단일대오가 흔들리는 건 중국에게 호재다.

중국은 유엔이 베이징올림픽 기간 전쟁을 중단하자며 채택한 ‘휴전 결의안’에 러시아는 찬성한 반면 미국, 영국, 호주 등은 서명을 거부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일부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미국의 책임이라는 논리다. 중국은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의 경우에도 미국과 그 추종세력인 조지아가 갈등을 확대시켜 러시아가 어쩔 수 없이 대응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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