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자의 전 배우자에 대한 농담이 들려오고, 곧바로 까르르 소리가 이어진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예능의 웃음 버튼이 된 듯한 모양새다. 방송에 출연한 이의 전 부인, 전 남편은 과연 이 모습을 마음 편히 볼 수 있을까.
예능을 사랑하는 많은 시청자들이 서장훈에 대해 말할 때 이혼을 떠올린다.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의 이혼이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소비돼 왔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방송된 JTBC '아는 형님'에서도 서장훈의 이혼과 관련된 말이 나왔다. 출연진은 과거 연인 혹은 배우자와 함께 일을 할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눴다. 서장훈이 말없이 앉아 있자, 김희철은 "그러면 장훈이 형은 예전…"이라고 했다. 서장훈은 전 부인 오정연의 이야기가 나올까 우려해 다급하게 "기권"이라고 외쳤다.
지난해에는 이수근과 혜리가 "콧대 높은 남자와 콧대 높은 여자"라며 팀명을 코코로 소개해 시선을 모았다. '요즘 우리는'을 함께 부르기도 했다.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서장훈은 "잔인하다"고 말했다. '요즘 우리는'은 이상민과 이혼한 이혜영이 속해 있던 그룹 코코의 노래기 때문이다. 이수근은 이혜영이 된 듯 "오빠, 나 잘 지내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마"라고 했고, 이상민이 장난스레 그를 때렸다.
지난 16일 방송된 MBN '신과 한판'에서는 조영남이 전 부인 윤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조영남은 과거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을 때 "바람피운 남자에 대한 최고의 복수였다"고 말해 대중에게 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윤여정이 배우로서 쌓아올린 결실들을 '복수'라는 단어로 폄하했다는 이유였다. '신과 한판'의 출연자 도경완은 이에 대해 언급하며 조영남에게 "논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했느냐"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 조영남은 "전혀 안 했다. 얼마나 근사하냐. 미국식 조크다"라고 답했다. 그가 이러한 말을 하는 장면에는 웃음소리가 삽입됐다.
조영남의 전 부인 이야기는 이후에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조영남은 "(윤여정이) 맨날 TV 광고에 나오고 영화에 나오니까 같이 사는 느낌이 든다. 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때도 웃음소리 효과음이 들려왔다. 이날 방송에서 윤여정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기까지 했다.
이 외에도 많은 연예인들의 이혼이 예능의 웃음 장치로 사용돼 왔다. 여러 스타들이 함께 출연한 이의 전남편, 전 부인을 언급하며 농담을 했다. 게스트의 이혼 관련 경험담 또는 망언을 들은 스타가 할 말을 잃은 듯 당황한 표정을 지어도 웃음소리 효과음이 삽입됐다. 이혼을 경험한 남녀 중 방송을 찾은 사람의 상황은 그나마 나았다. 그는 출연료라는 경제적 보상을 얻었고, 일부는 이와 관련된 예능 캐릭터를 구축했다. 불편함은 죄 없이 이야깃거리로 소비된 전 배우자의 몫이었다.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많이 사라지고, 이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많아진 상황이다. 그러나 이혼한 남녀를 일상에서, 그리고 TV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해서 이혼이 가볍게 다뤄져도 되는 주제는 결코 아니다. 누군가에겐 한때 사랑했던 이와의 이별이 큰 아픔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의 전 배우자, 혹은 시청자가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면 그 주제에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게 맞다. '이혼'과 '농담'이라는 단어가 썩 잘 어울리진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