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두 차례나 대형 사고를 일으켜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몰린 HDC현대산업개발이 이달부터 줄줄이 기업어음 만기를 맞는다. 당장 1분기(1~3월)에 꺼야 할 급한 불만 1조6,000억 원에 육박하는데, 광주 사고의 파장이 갈수록 커져 시장에서는 현산의 '차환 리스크'가 고개를 들고 있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현대산업개발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규모는 2조7,178억 원에 이른다. 이 중 58%인 1조5,948억 원의 만기가 1분기에 돌아온다.
ABCP는 유동화전문회사(SPC)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채권 등 특정자산을 기초로 발행하는 기업어음이다. ABCP는 회사채에 비해 발행이 쉬운 대신 만기가 6개월 이내로 짧다. 만기 직전에 새로 어음을 발행해 기존 어음을 상환하는 '차환 성공'이 중요하다. 현대산업개발은 ABCP 발행 과정에서 신용 보강을 위해 금융사와 '자금보충 또는 조건부 채무인수약정'을 맺은 것으로 파악된다. 차환에 실패하면 현대산업개발이 해당 ABCP를 직접 떠안아 투자자의 투자금을 갚겠다는 약속이다.
통상의 경우라면 현대산업개발의 높은 기업 신용도를 고려할 때 차환 발행에 전혀 문제 될 게 없지만, 광주 사고로 인해 시장의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는 게 문제다. 정부는 영업정지를 포함해 최고 수준의 제재를 거론하는 데다 브랜드 이미지까지 추락해 향후 수주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는 만큼 기업신용평가 회사들은 앞다퉈 신용등급 강등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광주 사고 직후인 지난 14일 ABCP 1,110억 원에 대한 차환 발행에 성공했지만 시장의 관심은 사고 파장이 확대된 이후 처음 만기가 도래하는 오는 28일(2,300억 원) ABCP 차환 발행 여부에 쏠려 있다. 실패한다면 이후 차환 발행 역시 줄줄이 어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산업개발은 기업어음 외에 오는 7월 단기차입금 8,000억 원의 만기도 돌아온다.
현대산업개발이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은 1조9,000억 원 수준이라 이 모든 리스크를 감당하기엔 상당히 빠듯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사고가 난 광주 현장에서 전면 철거 후 재시공이 결정될 수 있다는 점도 기업 신용도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거론된다. 한국기업평가 성태경 연구원은 "단기 대응은 가능하더라도 사고 여파가 장기화할 경우 유동성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현대산업개발 주가는 열흘 만에 44% 가까이 급락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도 대거 주식 처분에 나서 국민연금의 현대산업개발 지분율(9.73%)은 10% 아래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