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산 정상에 태극기 휘날리는 인니 사내

입력
2022.01.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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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보은의 뜻입니다."

20년 전 한국에서 월급을 떼이고 불법 체류가 아닌데도 신고까지 당한 트리야나(43)씨. 무안해진 기자에게 불쑥 태극기 얘기를 꺼냈다. "2005년 귀국길에 뭘 사 갈까 고민했죠. 동료들은 전자제품 같은 걸 사던데 저는 태극기를 인도네시아에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고국의 준산을 올랐다. 자바의 머르바부(해발 3,145m), 라우(해발 3,118m), 므라피(해발 2,930m), 롬복의 린자니(해발 3,726m) 등 화산 정상을 밟을 때마다 품에서 태극기를 꺼내 휘날렸다. "한국이 그립고 한국인 동료가 보고 싶고 무엇보다 한국이 고마워서"라고 했다.

'이유야 어떻든 억울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처음엔 원망했죠. 회사가 커가는 게 기뻤고 거기에 작은 힘을 보탰다고 자부했는데 왜 돈을 받지 못하고 신고까지 당했을까 하고요." 수긍하던 그가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다.

"그래도 같이 일했던 아줌마, 아저씨들이 그보다 많은 걸 줬어요. 엄마처럼 생각해 달라며 한국어를 가르치고 쌀과 옥수수를 가져다 준 아줌마들, 부지런한 게 마음에 든다며 치킨을 사 준 아저씨들. 특히 질서와 시간 약속을 잘 지키고 환경 보호에 힘쓰는 한국의 장점을 몸에 익힌 게 큰 재산입니다."

실제 그는 자신처럼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다 돌아온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한국에서 배운 질서, 시간, 환경 3원칙을 고향에 이식했다. 지난해 말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선정 최우수관광마을'이라는 결실(본보 13일 자 17면)을 맺었다. 익명의 자카르타 교민은 기사를 읽고 트리야나씨가 떼인 임금을 대신 갚아줬다.

트리야나씨는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한국의 시선을 잘 안다. "술 도박 등으로 탕진하고 사건을 일으키고 불법 체류하는 이들이 있는 건 사실이죠. 저도 부끄러웠어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고민하고 교육하기 위해 전직이주노동자협회장도 맡았습니다."

아픈 기억보다 한국의 장점을 취한 트리야나씨의 긍정이 멋지다. 우리 곁에 트리야나씨의 아줌마·아저씨 동료들, 익명의 교민이 있어 다행이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