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대 유모씨는 지난해 6월부터 노후자금 중 2,000만 원으로 카카오, 카카오게임즈, 카카오뱅크 주식을 샀다. 세 종목 모두 하락세에도 성장 가능성을 기대하며 유씨는 버텼다. 하지만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의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주식 매각으로 카카오 그룹주가 떨어진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생각이 바뀌고 있다. 그는 "300만 원 손해를 보더라도 지금 팔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코스피 3000 주역이자 기관, 외국인의 매도 공세에도 주가를 지탱한 개인 투자자(개미)가 증시를 등지고 있다. 주가가 3,000선을 내주면서 하락세인 영향도 있지만 △경영진 리스크 △쪼개기 상장 △기관·외국인에 유리한 투자 환경 등 시장 불신을 초래하는 각종 악재와 불공정한 환경이 개미를 시장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진단이다.
떠나는 개미는 질문을 남긴다. "시장, 믿을 수 있나요"라고. 결국 개미 규모가 빠르게 불어나는 데 비해 뒤처진 제도를 한 단계 끌어올려야, 투자자 발길을 되돌릴 수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2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개미는 지난해 11월, 12월에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각각 2조3,967억 원, 8조7,184억 원을 순매도했다. 개미 순매도는 2020년 11월 이후 1년 만이었다. 코스피 3000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한 달 동안 22조4,061억 원까지 순매수했던 지난해 1월의 개미와는 딴판인 모습이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등 해외 주식을 향한 개미 매수세는 강해졌다. 국내 투자자가 산 외화 주식은 지난해 2월 265억 달러에서 10월 141억 달러까지 줄었다가 개미가 국내 주식을 순매도한 11월, 12월에 각각 224억 달러, 210억 달러로 회복했다. 국내 주식(국주) 대신 미국 주식(미주)으로 눈을 돌린 개미가 늘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개미 이탈은 단기간에 급상승한 주가의 조정 가능성을 우려하는 자연스러운 투자 패턴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7월 3,305.21로 역대 최고점을 찍은 코스피는 이날 미국의 긴축 공포에 전일 대비 1.49% 떨어지며 2,792.00까지 밀렸다. 코스피가 2,800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13개월 만에 처음이다. 코스닥지수도 하루 만에 2.91% 떨어져 915.40으로 마감했다.
하지만 해외 증시로 눈을 돌리는 개인 투자자가 계속 늘고, 최근 국내 증시에서 동시에 터진 '불공정 이슈'를 감안하면 시장 자체를 신뢰하지 못한 개미가 증가했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우선 상장 직후인 지난달 10일 스톡옵션 주식을 팔아 수백억 원을 챙긴 카카오페이 경영진은 개인 투자자에게 큰 배신감을 안겼다. 상장 당시 '회사 성장 가치에 주목하라'던 경영진이 회사 주식을 고점에서 매각해 버린 후, 주가가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소액 주주만 큰 손해를 입는다는 대기업의 잇따른 '물적 분할'도 비판의 대상이다. 대기업은 물적 분할로 핵심 사업부를 떼어 자회사를 설립한 뒤 상장하고 있다. 기업은 이를 통해 더 많은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으나, 핵심 자회사 분할로 주가가 떨어진 모회사 투자자는 손 놓고 손해만 보고 있다.
당장 물적 분할을 통해 오는 27일 상장 예정인 '기업공개(IPO) 최대어'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의 모회사 LG화학 주가는 지난해 80만 원대에서 이달 60만 원대로 떨어졌다.
기관·외국인 투자자에게 유리한 투자 환경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LG엔솔 공모주 청약 과정에서 기관은 증거금을 내지 않아도 돼 자본금 50억 원의 투자자문사가 공모주 7조 원어치를 신청하기도 했다. 반면 개인은 증거금 제한으로 1주만 받거나, 심지어 1주도 받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공매도를 기관·외국인 투자자가 주도하는 점 역시 개미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러 불공정 이슈가 개미를 시장에서 떠나게 만들고, 이는 모처럼 재도약한 증시를 주저앉힐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결국 시장이 개미의 신뢰를 다시 얻지 못한다면 주가 회복 역시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의 규제 체계는 대주주와 소액 주주 간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경영권을 행사하는 대주주에게 유리한 게 사실"이라며 “경영진 스톡옵션 매각의 경우 미국처럼 사전 신고를 통해 소액 주주가 미리 주가 하락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위원은 "공정에 관심을 가지게 된 투자자가 과거에는 당연하던 현상을 더 이상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다 한국 주식 외에 해외 주식, 코인을 대안으로 여기고 있다"며 "물적분할로 주가가 떨어질 경우 소액 주주 보호를 위해 스톡옵션을 부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