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가 온갖 선택의 기준이 된 시대다. 1957년 마이어스와 브릭스 모녀가 만든 이 16개 성격 유형 진단표는 2022년 대한민국에서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주요한 척도가 됐다. MBTI 유형별 여행 상품과 보험 상품이 나오는가 하면, 소개팅에 나가도 이름보다 MBTI를 먼저 물어본다고 한다.
MBTI는 구인 구직에도 영향을 끼친다. 실제 지난해 한 종합식품회사는 하반기 신입사원 공개채용 자기소개서에 자신의 MBTI 유형을 소개하라는 문항을 넣었다. 특정 MBTI 유형을 채용 조건으로 내건 회사도 있다. 웹진 비유 2021년 12월호에 실린 심너울 작가의 단편 '어떻게 MBTI는 과학이 되었는가'는 'MBTI 공화국'이 된 요즈음의 대한민국을 소묘한 풍자 소설이다.
202*이 배경인 소설 속 대한민국은 "주민등록증에 MBTI를 새겨도 별문제 없을 만큼 곳곳에서 MBTI가 활용"된다. 고용노동부도 예외는 아니다. "청년의 MBTI 유형에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여, 심연 밑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고용률도 잡고 개인화된 복지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MBTI를 통한 청년 일자리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ESFJ 지원자에게는 영업직이 배정되고, INTP 지원자에게는 프로그래밍 교육이 국비로 지원되는 식이다.
심리학 박사로 국책 연구소에서 일하는 주인공 서마음은 이처럼 MBTI가 주요 지표로 활용되는 상황을 보며 괴로움을 느낀다. 그는 "대중심리학이 심리학의 권위를 탈취해 부와 관심을 누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 마음에게 어느 날 고용노동부의 MBTI 맞춤 일자리 지원 프로그램이 연구 과제로 주어진다. 마음은 이를 기회로 MBTI의 허점을 폭로하기로 결심하고, "이 기이한 MBTI 붐을 끝장내는 데 한몫"할 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연구를 위해 자료를 조사하며 마음은 이상한 점을 느낀다. 실제로 MBTI 유형에 적합한 일자리를 추천받은 사람들의 만족도와 심지어는 평균 실적까지 다른 유형보다 높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데이터 조작을 의심하던 마음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MBTI가 명백한 사실"이 되었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한국인들은 미디어와 일상에서 MBTI에 아주 많이 노출"된 나머지 "행동과 생각 방식이 정말로 자신의 유형에 부합하게 개조되어" 버렸다는 진실 말이다. 나아가 깨닫는다. 원하는 MBTI를 자신의 유형이라 믿는다면,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내 MBTI는 ISFJ다. ISFJ에 적합한 직업으로는 사회봉사직, 의료직, 교직, 중간 관리직 등이 있다. 어디에서도 '기자'가 어울린다는 분석은 찾아볼 수 없다. 기자가 잘 어울리는 성격 유형에는 ENTP나 ESTP가 있다. 지적이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호기심이 많고, 모험을 즐기는 유형으로, 전부 내게는 없는 특징들이다.
하지만 ISFJ에게는 이런 특징도 있다. "상상력과 타고난 섬세함으로 그들의 자애로운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상대방의 가슴을 진심으로 울리는 데 이들보다 더 천부적으로 소질이 있는 이들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ISFJ 기자도 하나쯤은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