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사상 최악의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체르노빌 방어에 나섰다. 러시아가 만일의 경우 북부 체르노빌을 통해 침략하면 속수무책으로 수도 키예프를 내줄 수 있는데다, 방사능 차단 시설 훼손에 따른 심각한 우려마저 나오고 있어서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당국은 지난해 11월 벨라루스와의 접경 지역인 체르노빌 일대에 7,500명의 병력을 추가 투입했다. 최근 러시아군도 다음 달 벨라루스와의 합동훈련을 앞두고 해당 지역에 수만 명의 병력을 집결시켰다. 우크라이나 군 당국 관계자는 “체르노빌 일대는 방사능 피폭 우려 등으로 최소한의 군 경비 인력만 투입하는 곳”이라며 “하지만 최근 접경 지역에 러시아군 배치가 늘면서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측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체르노빌은 1991년 우크라이나가 옛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우크라이나 영토로 편입됐다. 이 일대 1,000평방마일(2,590㎢)에 달하는 지역은 1986년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 이후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CEZ)’으로 지정돼 민간인은 물론 군 병력조차도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다만 체르노빌과 키예프 간 거리가 130여㎞에 불과해 러시아가 키예프를 공략할 경우 가장 최단 거리에 해당한다. NYT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북부를 공격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무방비 상태인 북부를 공략할 경우 보다 손쉽게 키예프를 탈취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쪽 국경뿐 아니라 우방인 벨라루스에도 병력을 지원하면서 북쪽에서도 압박을 가하고 있다. 가뜩이나 열세인 우크라이나는 1,126㎞에 달하는 북부 국경 지역에도 추가 병력 파견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심각한 것은 30여 년간 봉쇄해온 체르노빌에서 방사능 누출 우려마저 제기되는 점이다. 러시아가 체르노빌 일대를 공격할 경우 방사능 누출 방지 시설이 훼손될 위험이 매우 높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우크라이나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파괴된 원자로 위에 강철로 된 방사능 누출 방지 시설을 설치했다. 러시아군이 이 일대에 폭격을 감행할 경우 시설이 파괴돼 이 일대가 다시 한번 방사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NYT는 “체르노빌 일대에서 군사적 행동은 자칫 더 큰 재앙으로 이어질 불씨가 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략을 막으면서도 체르노빌을 지켜야 하는 이중고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