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신상정보 역주행

입력
2022.01.23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국제결혼인권연대’라는 단체가 3개월째 매일 오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국제결혼중개업자 모임인 이들은 ‘맞선 전’ 신상정보를 교환하도록 돼 있는 법령을 당사자 동의를 받아 늦출 수 있도록 개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치지 않는 확성기 시위에 오죽하면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정치권의 부처 폐지 공약보다 이들의 확성기 소리가 더 압박감을 준다고 토로할 정도다.

□ 이 단체는 베트남, 캄보디아 등 주요 결혼이주여성 출신국의 행정절차가 복잡해 맞선 전까지 여성들이 신상정보 자료를 발급받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중개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일부 서류가 미비하더라도 관행적으로 동의를 받아 현지에서 결혼을 성사시키는데 성혼율을 높이기 위해 이 관행을 제도화시켜 달라는 것이다. 파경을 맞을 경우가 문제라고 한다. 이주여성들은 ‘탈법’을 빌미로 중개업자들을 고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연 매출 1억 원 미만 영세사업자가 대부분인 업계 사정상 고발 한두 번이면 존폐 위기에 몰린다고 호소한다. 이 단체는 최근 폐업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경기도 한 중개업자의 영정을 들고 21일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여가부는 부정확한 정보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선 맞선 전 정보제공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피해가 감소했다고는 하지만 국제결혼중개업체에 입은 피해 중 ‘정보 미제공과 허위정보 제공’이 전체의 4분의 1이나 된다. 국제결혼은 맞선부터 결혼까지 5.7일밖에 걸리지 않는 속성결혼이다. 이런 특성상 결혼하고 봤더니 이혼경력이 있다거나 신용불량자였다는 피해 호소가 끊이지 않는다.

□ 국제결혼은 한 해 2만 건을 헤아려 전체 결혼의 10% 안팎이다. 저개발국가 여성들에 대한 매매혼ㆍ인권피해 등 지적이 잇따르면서 정부는 결혼ㆍ범죄경력 등 신상정보 교환을 의무화(2012년)하고 키, 얼굴 등을 공개하는 국제결혼 광고를 금지(2021년)하는 등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건 국제결혼의 신상정보 제공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11명이 발의(결혼중개업 관리법)해 심의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인권을 존중한다는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할 일인가.

이왕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