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말 대역 '까미'의 죽음, '생명 재테크'도 추천... 공영방송 맞나요

입력
2022.01.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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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보다 뱀"… '생명 재테크' 제안
KBS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에서
'태종 이방원' 동물 학대 논란 이어... "생명 경시" 비판
자연 다큐에만 있는 동물 촬영 가이드라인
"새 날아가지 못하도록 다리 부러뜨려" 
영화·드라마 촬영장 동물권 침해 심각

KBS가 잇따른 생명 경시로 물의를 빚고 있다. 아침 정보 프로그램에서 살아 있는 동물을 재테크 수단으로 소개하더니, 사극 '태종 이방원' 낙마 촬영에 동원된 말이 몸이 90도로 들리며 머리부터 바닥으로 고꾸라져 촬영 일주일 만에 사망하면서 동물 학대 논란이 일고 있다. 공영방송이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제작 관행과 동물권에 대한 시대에 뒤떨어지는 인식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해 생명 윤리를 짓밟고 있다는 지적이다. '태종 이방원' 촬영 후 죽은 말은 주인공 말의 대역으로, KBS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엔 자연 다큐멘터리 외 프로그램에서 동물 관련 윤리적 촬영 등에 대한 기준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물단체들은 KBS에 "방송 촬영 시 동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 규정을 마련하라"고 규탄했다. 또 생명 경시를 조장하는 프로그램 제작을 지양할 것을 촉구했다.




아침정보프로그램도 생명 경시 비판

지난달 10일 KBS2 '굿모닝 대한민국 라이브' 코너 '굿모닝 머니'에선 이색 동물을 잘 키워 돈을 버는 재테크를 주제로 한 방송이 전파를 탔다. 한 마리 분양가가 100만 원인 뱀(볼파이톤)이 15개의 알을 낳고, 그 알이 성체가 되면 1,500만 원을 벌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제작진은 거북이보다 뱀이 재테크 수단으로 좋다고 권했다. 방송엔 "재테크용으로 성체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은 뱀을 추천한다"는 내레이션이 깔렸다.

공영방송이 동물을 사고파는 대상으로 소개하고 생명을 재테크의 수단으로 추천하자 온라인엔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잇따랐다. KBS시청자권익센터엔 '지금 의식과 수준이 어느 시대에 머물러 있기에 살아 있는 뱀, 거북이, 가재등을 재테크 수단으로 소개를 합니까? 그것도 공영방송에서'(박아*)라며 제작진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이 제기됐다. 신주운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팀장은 "'굿모닝~'의 사례는 생명 경시로 비칠 수 있고, 최근 SBS의 '공생의 법칙'은 생태교란종을 혐오의 대상으로만 그려 우려스러웠다"며 "지상파의 동물 담론과 관련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왜 CG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공영방송은 '동물 배우'의 동물권도 침해했다. 동물자유연대가 공개한 '태종 이방원' 현장 영상을 보면 달리던 말은 제작진이 발목에 묶어 놓은 와이어(줄)를 잡아당기자 머리부터 땅으로 고꾸라진다. 갑자기 당겨진 줄에 가속과 무게를 이기지 못한 탓이다. 쓰러진 말은 흙바닥에서 뒷발을 두 번 강하게 구른다. 큰 충격으로 인한 고통으로 추정된다. 방송에 1~2초 나오는 낙마 장면을 생생하게 찍는다는 명목으로 제작진이 고의로 말을 넘어뜨리고, 해를 가한 것이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태종 이방원' 촬영 뒤 사망한 말은 '까미'라 불린 퇴역 경주마"라며 "말 대여업체에 팔려온 뒤 '태종 이방원'에 주인공 말의 대역으로 투입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제작 방식은 1930년대 미국 할리우드에서 서부극 촬영 때 쓰였다. 영화 '경기병 여단의 돌격'(1936)에서 제작진들이 말 다리를 철사로 묶어 계획적으로 말을 넘어뜨렸고, 촬영 뒤 25마리의 말이 죽었다. 그 이후 영화나 드라마 속 안전한 동물 촬영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촬영 방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1995) 제작진은 초원에서 벌어진 전쟁 장면을 찍기 위해 모형 말을 제작해 레일에서 움직이게 한 뒤 급제동하는 방식으로 낙마 장면을 촬영했다.

이런 흐름을 역행한 '태종 이방원'의 문제적 촬영은 제작 편의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낙마 장면을 연출할 수 있지만, 예산과 CG 작업을 위한 추가 시간 확보가 필요해 산 동물을 넘어뜨리는 방식을 택했을 것이라는 게 방송 및 동물 단체 관계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성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기획차장은 "공영방송에서 산 동물을 '갈아 넣는' 촬영을 한 건, 한류라는 화려한 장막 뒤에 어떤 구조적 문제가 있는지를 보여주고 한국 영상 산업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카라는 20일, 한국동물보호연합은 21일 경찰에 '태종 이방원' 촬영장 책임자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각각 고발했다. 동물보호법 제8조에 따르면 동물을 오락 등의 목적으로 상해를 입히거나, 이런 행위를 촬영한 영상물을 상영하는 것은 동물 학대로 간주된다. KBS는 "낙마 촬영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고,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다른 방식의 촬영과 표현 방법을 찾도록 하겠다"고 사과했지만, 비판 여론은 쉬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소 부상 표현 위해 일부러 상처" 소품 취급받는 동물들

동물 배우에 가해진 폭력적 촬영은 그간 꾸준히 제기돼 온 고질적 문제였다. 카라의 '2020 동물 촬영 미디어 실태 분석'에 따르면 일부 제작진은 촬영 중 말을 멈추려 전기 충격기를 사용하고, 새가 멀리 날아가지 못하도록 다리를 부러뜨린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의 부상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상처를 내고, 토끼가 촬영 중 죽는 일도 벌어졌다. 동물은 여전히 소품 취급을 받는 것이다.

KBS를 둘러싼 동물 학대 논란이 들불처럼 번지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사람과 동물 모두가 안전한 제작 환경을 만드는 것에 공영방송이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정의당은 "실체적인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양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