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중대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은 ‘평소 안전에 투자할 여력이 적은’ 중소기업들이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670건의 중대재해 중 66%는 이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유예됐거나 대상에서 제외된 중소기업(50인 미만 사업장 215건, 공사금액 50억 미만 건설업장 229건 등)에서 벌어졌다.
그럼에도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2년간 법 적용을 유예했다. 현실적인 대비 기간을 주겠다는 취지지만, 2년 뒤 이들이 재해사고 무풍지대로 거듭나기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산적한 상태다.
중소기업이 중대재해법을 향해 입을 모으는 최대 난제는 비용이다. 건설업의 경우, 통상 아파트 1,000가구 공사 기준 하청업체는 원청사로부터 1억5,000만 원 안팎의 ‘안전관리비’를 받는다. 이론상 부족분은 하청업체가 마련해야 하지만, 대부분 업체는 "안전관리비가 10원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공사금액을 낮게 써야 낙찰이 되는 마당에 하청업체가 안전관리비까지 마련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인건비도 문제다. 아무리 하청업체라도 적어도 안전 관련 인원을 2명은 충원해야 '재해에 대비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2년 안에 과연 이런 비용을 마련할 구조가 될지 의문"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우려다.
고질적인 현장의 책임 떠넘기기 관행도 넘어야 할 산이다. 광주 사고 이후 몇몇 하청업체는 원청사로부터 벌써 "중대재해를 발생시키면 계약을 취소하겠다"는 공문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의거해 '사고 발생 시 1년 입찰 정지'를 시켰는데, 중대재해법 이후로는 아예 계약을 취소하겠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임원급 안전관리 인사 A씨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책임은 원청에서 하청으로, 하청에선 갑이 을, 병으로 계속 넘기면서 결국 가장 열악한 하청업체부터 줄줄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선 현장에선 정부를 중심으로 2년 뒤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중소기업진흥회는 5대 법정교육에 더해 중대재해법 관련 교육을 필수교육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구체적인 예방책을 제시할 계획이다.
예컨대 산업 현장마다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헬멧에 무선 카메라를 탑재하는 등으로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장치를 다각도로 확대하는 방안, 산업안전을 담보할 안전장비 생산 업체와 협력을 맺도록 하는 방안 등이다.
법의 사각지대인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관심이 필요한다. 이들은 인력수급 어려움은 물론, 산재보험 가입률도 현저히 낮다. 류필선 소상공인연합회 정책홍보실장은 "산재보험에 미가입된 경우가 여전히 많은데, 정부가 사회보험료를 지원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최근 국회에 이런 의견을 제시하는 한편, 안전사고 감소를 위한 산업안전교육을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