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24일, 대한민국 인터넷이 12시간 이상 마비되는 사상 초유의 인터넷 대란이 빚어졌다. 이전에도 해킹이나 바이러스 등으로 일부 사업자의 서비스가 중단되거나 특정 인터넷 사이트가 접속장애를 일으킨 적은 있었으나 국내 인터넷 서비스가 전면 중단된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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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사고는 주말인 25일 오후 2시 이후 KT, 하나로통신 등 주요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의 도메인네임서버(DNS)가 '윈도 SQL 슬래머'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아 무력화되면서 발생했다.
바이러스 공격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독일, 캐나다, 일본, 태국 등 전 세계에서 발생했고, 대한민국의 피해가 특히 심했다. 인터넷 마비사태는 26일 새벽 대부분 정상화했으나 평일 업무가 시작되는 27일에 재발할 가능성이 있어 당시 정부를 비롯해 온 사회가 위기감 속에 노심초사하였다.
인터넷 서비스 마비로 경제적 피해가 잇달았다. 당시 한국일보 보도를 살피면 PC방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고, 설 특수를 앞둔 인터넷 쇼핑몰은 매출 손실에 직격탄을 맞았다. 인터넷 뱅킹이 마비되어 이를 이용하려는 고객과 기업들의 불편도 컸다. 철도 및 항공편의 인터넷 예매도 중단돼 현장에서 구매와 발권을 해야 했다. 인터넷으로 원서를 접수하던 대학들도 혼선을 빚었다.
전자정부 홈페이지도 멈춰 서 민원인들이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전자정부의 4,000여 각종 민원 안내 및 민원 신청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되자 사이버민원인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경찰도 사이버 범죄 수사에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와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인터넷이 마비되는 동안 IP 추적 등이 불가능해 진행 중이던 수사를 중단하는 등 업무에 차질을 빚었다.
주말 동안 응급실을 가동한 대학병원 등 종합병원들은 건강보험 조회를 하지 못해 치료비를 둘러싸고 환자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인터넷망 마비로 건강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지 못해 환자들이 접수창구에서 오래 기다리는 불편을 겪었다. 또한 보험카드를 가져오지 않은 환자들은 보험 처리를 하지 못해 "치료비가 많이 나왔다"는 항의가 속출했다.
'1·25일 인터넷 대란'이 발생했을 때 가장 빨리 원인을 밝혀내고 대처 방법을 발표한 곳은 정부 기관도 보안전문 업체도 아닌 '윈도 이용자 그룹'이라는 인터넷 동호회였다. 8만 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는 '윈도 이용자 그룹'은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NT 사용자들이 만든 동호회로, 회원 대부분이 네트워크 관리자와 관련 학과 학생들로 구성돼 있었다.
이 동호회는 25일 오후 2시 30분경 테스트 서버를 모니터링하다 이상을 발견, 원인 분석을 통해 오후 5시 40분에 "MS-SQL 2000의 허점을 이용한 웜의 확산이 원인"이라며 "긴급히 서비스팩 3(SP3)을 다운로드해 패치하라"고 공지했다. 이는 이날 오후 7시 사고 원인을 알아낸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컴퓨터비상대응팀(CERT)보다 1시간여 빠른 것이었고, 오후 9시 동일한 내용을 발표한 하우리와 안철수연구소 등 보안 전문업체보다는 훨씬 빠른 것이었다.
2월 18일 정보통신부는 수사기관, 인터넷 접속서비스업체(ISP), 정보보호업체 및 연구기관의 보안전문가 12명으로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인터넷 대란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슬래머 웜으로 인한 네트워크 트래픽 증가가 원인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 웜에 감염된 서버는 초당 1만∼5만 개의 패킷을 생성, 네트워크 트래픽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감염서버가 있는 기업이나 대학 등의 인터넷 접속 경로가 차단됐다.
당시 정보통신부는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에 피해가 큰 이유로 상대적으로 많은 SQL서버 감염, 국내 루트 도메인네임서버(DNS)가 부족해 국제회선 포화에 따른 국내 DNS서버 과부하, 초고속통신망 및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통한 급속한 확산, 일반 이용자들의 보안불감증 등을 지적했다.
여러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 인터넷 대란은 소송으로 이어졌다. 참여연대는 그해 4월 인터넷 가입자, PC방 업주 등 1,586명과 함께 KT·하나로텔레콤·마이크로소프트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후 2006년 11월 3일 서울중앙지법은 손해배상 청구소송(2003가합32082)에서 KT와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 ISP업체들의 위법성을 인정하기 힘들고 당시 취해야 할 주의 의무를 모두 이행했으므로 원고 측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2005년 12월 오마이뉴스와 인터파크 등이 KT 등을 상대로 낸 같은 취지의 소송에서 패소했다. 인터넷 불통에 따른 이용자와 서비스 공급자, 국가 간의 공방은 이렇게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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