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김광규씨가 과거 '전세사기'로 무명 시절부터 10년간 모은 재산을 날린 사연이 최근 주목받았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월셋집을 전세로 소개한 뒤 중간에서 전세금을 챙겨 도망갔다는데요. 같은 빌라에서 7가구가 피해를 입었지만 3년간 이어진 재판에서도 패소해 결국 재판 비용까지 치렀다고 합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건 김씨만이 아닙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전세반환보증) 사고는 2,799건, 사고 총액은 5,790억 원에 이릅니다. 2020년보다 각각 391건, 1,108억 원 늘었습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집주인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세입자의 보증금을 노린 '나쁜 임대인'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전세사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23일 부동산 전문 변호사들에 따르면 전세사기에는 크게 네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먼저 김광규씨처럼 대리인이 임차인과 전·월세 계약을 이중으로 맺은 뒤 보증금을 가로채는 수법입니다. 집주인에게 월세 계약 체결을 위임받고 임차인과는 전세계약을 맺어 보증금을 꿀꺽하는 것이죠. 2019년 경기 안산시에서 중개보조원으로 일하던 자매가 이런 수법으로 120여 명으로부터 65억 원을 챙긴 사건이 드러나 한동안 떠들썩했습니다. 이 외에 대리인이 아닌 월세 세입자가 집주인 행세를 하며 다른 임차인과 전세 계약을 체결한 사례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깡통전세'입니다. 깡통전세는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에 육박하는 매물을 일컫습니다. 나쁜 임대인들은 매매 시세보다 비싼 가격으로 전세 계약을 맺은 뒤 명의를 곧장 경제력이 없는 제3자에게 떠넘깁니다. 노숙인에게 이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졸지에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없어진 세입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경매에서 해당 주택을 직접 낙찰받는 일도 생깁니다.
세 번째는 집 한 채를 여러 임차인과 계약하는 수법입니다. 계약 전에는 타인의 임대차 사실을 알기 어려운 맹점을 노린 것입니다. 김예림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임차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주민등록 전입세대 열람도 임대차 계약을 맺은 후에나 신청 가능하기 때문에 계약 전에는 서류상으로 확인할 방도가 없다"며 "중개인 없이 임대인과 직거래하는 경우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크다"고 조언합니다.
마지막으로 '신탁사기'도 기승을 부립니다. 소유권이 신탁회사에 넘어간 집을 '무늬만 집주인'인 위탁자가 멋대로 임대차 계약을 맺고 보증금을 챙기는 것입니다. 신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신탁원부 발급이 번거롭고 권리 관계 파악이 까다로운 점을 악용하는 것이죠. 최악의 경우 세입자는 불법점유자로 몰려 보증금을 몽땅 날리게 됩니다. 신탁사기는 이전 '부.전.자.전'(불안불안 신탁부동산..."신탁원부 꼭 확인하세요")에서 자세히 다룬 바 있습니다.
전세사기 소송 경험이 많은 변호사들은 입을 모아 '사전 예방이 최선'이라고 강조합니다. 대부분 피해 사실을 뒤늦게 인지해 보증금을 지키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김 변호사는 "전세보증금 반환 소송에서 경매까지 2년은 족히 걸리고 비용도 만만찮다"며 "송달조차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승소해도 돈을 돌려받는 데 애를 먹곤 한다"고 말했습니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임대인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사기죄로 처벌도 쉽지 않은 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젊은 층이 주로 전세사기의 표적이 되고 있어 사회 초년생들은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한 건물에 거주하는 젊은이들이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사건도 종종 생깁니다. 엄 변호사는 "고가 매물은 세입자가 꼼꼼하게 따져도 중저가 매물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고, 젊은이들은 관련 경험이 적은 점도 타깃이 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피해 예방의 첫걸음은 HUG 전세반환보증 가입입니다. 보증금을 지킬 수 있고 만약 문제가 있는 집이라면 가입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은행에 전세자금대출을 알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김 변호사는 "은행은 담보 가치를 엄격하게 보기 때문에 대출이 잘 나오지 않거나 이율이 너무 높은 경우에는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계약은 중개인 입회하에 임대인과 직접 하고, 등기상 소유주와 계약자 신분증을 비교해 진짜 집주인이 맞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잔금도 집주인 계좌로 보내는 게 안전합니다. 엄 변호사는 "되도록 임대인과 직접 계약하되 대리인이라면 위임이 월세인지 전세인지, 위임장이 위조는 아닌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물건의 시세를 알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깡통전세 유형은 시세가 아직 형성되지 않아 깡통전세 여부를 알기 어려운 신축 빌라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반대로 주변 매물보다 너무 싼 가격에 나온 집은 피해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 매물'일 수 있습니다.
자격이 없는 컨설팅 회사나 분양 대행사가 중개업자를 사칭하기도 해 '국가공간정보포털'에서 등록 중개인 여부도 확인하면 좋습니다. 엄 변호사는 "중개업자 가담 시에는 추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정작 계약 단계에서 자신의 중개 사실을 기재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믿을 수 있는 중개인과 계약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