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라”.. 혐오 시설 취급받는 조승우 반려견 ‘곰자’의 고향

입력
2022.01.22 10:00

지난 16일, 경남 고성군 동물보호소. 이곳에서 살던 유기견 ‘새벽이’에게 새로운 삶의 길이 열렸습니다. 안락사를 하루 앞두고 자신을 입양해 줄 가족이 나타난 겁니다.

그러나 희망은 이내 산산조각 났습니다. 갑작스레 이동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새벽이는 보호소 문이 잠시 열린 틈으로 도망치듯 탈출했습니다. 보호소 밖으로 도망친 새벽이는 다음날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채로 발견됐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새벽이는 새 가족의 품에 안기지도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사고는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지난 12일, 동그람이가 고성 동물보호소를 방문했을 당시 보호소의 환경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좁은 창고에 마련된 임시 보호소에서는 180여 마리의 유기견들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공간이 모자라 몇몇 개들은 층층이 쌓인 철장 안에서 생활해야만 했죠. 일부 개체들은 불안한 듯 사람이 다가가면 경계심을 보이거나, 철장 한켠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입양을 기다리던 새벽이 역시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새벽이의 입양을 주선한 동물보호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 관계자는 동그람이와의 통화에서 “새벽이가 불안해하며 순식간에 뛰쳐나갔다”며 “목줄을 채우는 과정을 생략한 보호소 관리자의 실수”라고 경위를 설명했습니다.

새벽이와 함께 17일 안락사가 예정된 유기견들은 모두 20마리였습니다. 다행히 보호소 관리와 입양 홍보를 진행한 비구협의 노력 끝에 모두 새로운 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구협 관계자는 “최근 들어 입양을 보내기가 매우 어려워졌다”며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고성 동물보호소는 지난해 1월, 배우 조승우 씨가 입양한 반려견 ‘곰자’가 지내던 곳으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2020년까지 위탁 운영되는 과정에서 무분별한 안락사와 보호소 운영비 부정 수급의 문제점이 지적돼 지자체 직영으로 전환된 곳이기도 하죠. 고성 지역에서 동물보호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는 천진성 씨는 동그람이와 만난 자리에서 “곰자가 입양된 뒤 희망이 조금 보이는 듯했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털어놓았습니다. 1년 사이 이곳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유기동물 발생 전국 6위 지자체.. “우리 동네에 보호소 안돼”

고성군은 전국적으로 유기견 발생이 많은 지역 중 하나입니다. 동물자유연대가 동물보호관리시스템(APMS)에 공고된 자료를 분석해 17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고성군에서 유기동물 포획은 605건 발생했습니다. 이는 고성군 인구 1만명 당 119.9건 발생한 것으로 전국 기초단체 중 6위입니다. 인근 지자체인 사천시(32.3건), 통영시(40.3건), 함안군(58.7건) 등에 비해 적게는 2배, 많게는 3배가 넘는 수준입니다.

문제는 직영으로 전환하고, 무분별한 안락사를 자제하면서 빚어졌습니다. 안락사 없이 최대한 입양을 주선하면서, 보호 기간이 늘고 개체수도 자연스레 증가한 겁니다. 당초 고성군은 농업기술센터 창고에 임시 보호소를 운영한 뒤에 보호소를 신축해 보호 개체 수를 늘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보호소 신축 계획은 갈 곳을 잃었습니다. 지난해 고성군의회는 ‘주민 반대’를 이유로 농업기술센터 부지에 신축 예정이었던 보호소 예산을 삭제했습니다. 군의회는 대신 보호소 예산으로 2억원 가량을 배정했지만, 이 예산의 용처는 ‘농업기술센터 외 다른 부지에 보호소를 세운다’는 전제로 세워진 예산이라 사용할 수도 없다는 게 군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그 사이, 보호소 사정은 더욱 악화돼 유기견들끼리 서로 싸우는 교상사고가 6건 발생해 2마리가 폐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주민들은 보호소 신축에 왜 반대할까요? 일부 주민들은 논의 초기에 보호소 내에서 발생할 소음과 오·폐수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그러나 군 관계자는 “현재 임시로 조성한 보호소와 인근 마을의 거리는 반경 400~800m 떨어져 있어 실제 소음이 전해질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동그람이가 현장을 찾았을 때도 임시 보호소 근처에서만 소음이 들릴 뿐, 농업기술센터 밖에서는 개가 짖는 소음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오·폐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동물보호소는 분변을 치운 뒤 이를 오·폐수로 배출하지 않습니다. 분변을 일일이 치운 뒤 종량제 봉투에 담아 처리하죠. 동그람이가 확인한 고성군 보호소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군 관계자는 “임시 보호소 운영 초기에 주민 2~3명이 소음 문제를 제기한 적은 있었지만, 방음조치를 한 뒤 민원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보호소는 혐오 시설’ 인식 조장하는 지역 정치권.. 피해는 동물들 몫

고성군은 이 같은 사실을 이미 주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군의회는 “왜 굳이 농업기술센터 부지를 고집하느냐”고 말합니다. 지난해 12월 열린 고성군의회 기획행정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A 군의원은 “농업기술센터는 농업의 성지”라며 “공원이 멋지게 돼 있는 비싼 땅에 유기견 센터를 지으려 하니까 처음부터 안 된다고 했는데 왜 밀어붙이느냐”고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동그람이는 이 발언을 한 군의원과 통화를 시도해 발언 취지를 물으려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이 발언에 대해 천진성 씨는 “보호소를 ‘혐오 시설’ 취급하는 말” 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실제로 반대 입장을 보인 인근 마을 이장 B씨도 동그람이와의 통화에서 “(동물보호소가) 마을에 어떤 피해를 준다기보다 농업기술센터에 들어선다는 데 거부감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천씨는 “농업의 성지라서 안 된다는 논리라면 농업기술센터에 보호소를 세운 통영과 사천 등 인근 지자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렇다면 농업기술센터 외에 다른 대안은 없을까요? 군 관계자는 “보호소를 짓기 위해서는 군이 보유한 땅에 지어야 하는데, 농업기술센터 외에는 적절한 부지가 없다”며 “담당 부서(축산과)가 기술센터에 있는 만큼 관리가 용이한 측면도 있지만 대안 부지가 없는 것도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주민들과 통영에 신축한 보호소 견학도 진행하고, 주민 숙원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취지도 전했지만 설득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천씨 역시 “관련 토론회를 하면 반대 측에서는 ‘사람이 없는 산으로 가라’는 말을 반복하는데 그곳에서 어떻게 유기견을 잘 돌보겠는가?”라며 “길에서 떠돌아다니는 개들이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보호소를 짓겠다는데 혐오 시설 취급하는 게 안타깝고 답답하다”고 말했습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동물자유연대 채일택 정책팀장은 동그람이와의 통화에서 “고령층이 많은 지방에서는 동물보호소를 혐오 시설로 인식하는 시선이 존재할 수 있다”며 “결국 긴 시간을 들여서 주민들을 꾸준히 설득해야 하는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갈등 조정의 역할을 할 정치권에서 주민들의 반대 의견만 들어 역할을 회피하거나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천씨는 보호소 관련 간담회를 할 때마다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합니다. 그는 “반대 주민들과 군의원들을 설득하려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만들지만 들여다보지도 않는다”며 “보호소 신축을 결사반대한 A 군의원은 아예 간담회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안락사 명단에 올랐지만, 극적으로 입양자를 찾은 곰자와 새벽이의 운명은 이렇게 엇갈렸습니다. 죽은 새벽이를 화장한 비구협 관계자는 “보호소가 제대로 신축돼 격리실과 입양 상담실 등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었다면 새벽이의 안타까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허탈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고성 보호소 160마리 동물들의 설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습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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