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에 눈이 펄펄 내린다. 눈이 내리니 여러 음식의 추억이 새삼 떠오른다. 할머니가 홍두깨로 면을 밀어 끓여준 손칼국수를 비롯해 온갖 포근하고 따끈한 집밥은 물론, 시원하고 짜릿한 음료도 떠오른다. 여기까지만 운을 떼더라도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렇다, 세계인의 음료인 코카콜라 이야기다.
어떻게 가장 미국적인 탄산음료와 충청남도 작은 읍의 음식 기억이 공존할 수 있을까?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라 분리하기가 어렵지만, 더듬어 본다면 역시 광고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북극곰 광고로 코카콜라를 기억한다. 북극곰이 스케이트를 타거나 아기곰이 힘겹게 끌고 가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대신 옮겨 주고는 코카콜라를 들이켠다. 생각해보면 등골에 소름이 우수수 돋아야 할 것 같은 상황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고 짜릿하게 다가온다. '아, 겨울엔 코카콜라지'라고 너무나도 자연스레 각인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평소에 코카콜라를 열심히 마셔왔던 것도 아니다. 탄산음료가 금기시된 집에서 자랐으니 어린 시절엔 거의 마시지 못했고 지금도 건강을 생각해 무설탕 제품을 가끔 찾을 뿐이다. 그런데도 온갖 소중한 음식의 기억 속에 코카콜라가 자리를 버젓이 차지하고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코카콜라 광고의 위력은 막강하다. 1886년 발명된 이후 135년 동안 코카콜라는 늘 시의적절한 광고 캠페인이며 상징 등을 활용해 이미지를 굳혀 왔다. 그래서 광고의 발달사 없이 코카콜라의 역사를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코카콜라를 발명한 존 펨버튼은 미 남북전쟁에 참전한 남부군 대령이었다. 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모르핀 중독에 빠지자 취득한 의학 학위를 활용해 모르핀의 대체재를 찾는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1885년, 그의 약국인 팸버튼의 이글 드럭 앤 케미컬 하우스(조지아주 콜럼버스 소재)에서 '프렌치 와인 코카 신경 강장제'가 탄생한다.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코카(코카인의 재료) 와인인 뱅 마리아니를 참고하고 콜라넛으로 카페인을 첨가한 음료였다.
1886년, 콜럼버스의 인접 대도시인 애틀랜타에서 금주령을 선포하자 펨버튼은 프렌치 와인 코카에서 알코올을 뺀 음료를 개발하고는 '코카콜라'라 이름 붙인다. 그리고 1886년 5월 8일, 애틀랜타 소재 제이콥네 약국에서 처음으로 코카콜라의 판매가 이루어진다. 초창기의 코카콜라는 의약품으로 특허를 출원해 탄산수전(soda fountain)을 통해 판매되었다. 탄산수가 건강에 좋다는 당시의 믿음 때문이었는데, 그밖에도 펨버튼은 코카콜라가 모르핀 중독, 소화불량, 신경 불안, 두통, 발기 부전 등에 효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해 5월 29일, 지역 신문인 애틀랜타 저널에 처음으로 코카콜라의 광고가 실린다. 요즘도 코카콜라의 광고에서 쓰이는 단어 '상쾌한(refreshing)' 등으로 특징을 설명한 코카콜라의 최초 가격은 한 잔에 5센트였다.
1888년 펨버튼과 애틀랜타의 사업가 네 명 사이에서 맺어진 동업 계약이 분쟁과 정리를 거듭한 끝에 1892년, 에이사 캔들러에 의해 오늘날의 코카콜라사가 설립된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코카콜라는 약국에서 시럽에 탄산수를 탄 형식으로만 마실 수 있었으니, 현재의 형식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건 1894년 이후였다. 1894년 미시시피주 빅스버그에서 최초로 코카콜라의 병입이 이루어졌고, 이후 독점 계약권이 단 1달러에 팔려 1899년 테네시주 채터누가에 첫 전용 병입 공장이 설립되었다.
당시 계약의 세부사항이 불분명했던 탓에 1886~1959년 코카콜라는 고정된 가격인 5센트에 팔렸다. 190㎖ 한 병을 니켈화(貨) 한 닢으로 사 마실 수 있었던 것이다. 병입에 힘입어 1886년 하루에 고작 6병 팔렸던 코카콜라는 1900년 미국 모든 주에서 팔리게 되었다.
①1890년대
74년 동안 고정된 '한 병 5센트'의 가격과 더불어, 1890년대부터 오늘날의 캠페인과 궤를 같이 하는 코카콜라의 이미지 메이킹이 이루어졌다. 시대상을 반영한 라이프스타일의 이미지와 가격을 함께 강조한 협공이었다. 코카콜라의 초창기 광고는 대부분 부유한 여성의 삽화를 내세워 고급 음료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성장(盛裝)을 한 여성이 마차를 모는 와중에 코카콜라를 시중 받는다거나, 무도회에 어울릴 것 같은 화려한 옷차림의 여성이 우아한 잔에 코카콜라를 따라 마시는 이미지였다. 물론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여성의 대상화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경향은 1910년대까지 이어졌다.
②1920년대
미국 전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코카콜라는 술의 대체 음료로 첫 번째 전성기를 맞는다. 당시의 코카콜라 광고는 '상쾌한 이 순간(The Pause That Refreshes, 1929)'이라는 문구와 더불어 고단한 삶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전략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그해 10월 뉴욕 주식시장의 폭락과 더불어 세계 대공황이 시작되자 '힘들 때는 코카콜라와 함께(When It’s Hard to Get Started, Start With Coca-Cola)'라는 문구를 내세워 이미지의 강화를 시도했다.
③1930년대
지금까지도 코카콜라의 상징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산타클로스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지금껏 활용했던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에서 벗어나 강한 상징성을 가진 인물(?)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이미 1920년대부터 활용되고 있었던 문구 '맛있고 상쾌한(Delicious and Refreshing)'이 산타의 상징성을 보좌하는 데 쓰였다.
한편 1939년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자 코카콜라는 '코카콜라도 함께 갑니다(Coca-Cola Goes Along)'라는 문구로 시대상을 반영했다. 한 병 5센트의 가격은 전장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해, 미군의 주둔지라면 어디에서나 코카콜라를 그 가격에 사 마실 수 있었다. 2차대전 기간 동안 10군데의 코카콜라 해외 공장이 세워져 50억 병의 코카콜라를 공급했다.
④1940년대
산타클로스가 계속 등장했지만 그보다 귀향 장병을 활용한 이미지 연출이 이 시대의 광고로 남았다. '내 오랜 친구 코카콜라(My Old Friend Coke)' 같은 문구에 미소를 지으며 귀향하는 병사의 이미지를 병치함으로서 전쟁을 통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미국의 위상을 암시한다. 2차대전 종료 후에는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개시한 전미 고속도로망 건설과 그로 인한 자동차 시대의 시작을 적극 반영한 광고가 등장한다. '코카콜라, 고속도로를 통해 전국 어디서나(Coca-Cola, Along the Highway to Anywhere)'라는 문구와 더불어 고속도로 자판기를 부각시킨 광고였다.
⑤1960년대
1969년 미국의 베트남전 철수를 필두로 냉전의 분위기가 잦아들자 코카콜라는 '힐탑(Hilltop)' 광고를 내세운다. 이름처럼 세계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이 이탈리아 로마 인근의 한 언덕에 모여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었다. 손에 코카콜라 병을 들고 '진짜(It Is the Real Thing, 1971)', '온 세상 사람들에게 코카콜라를 사주고 싶어요(I’d Like to Buy the World a Coke)' 등의 가사를 통해 세계의 평화와 화합을 강조했다.
⑥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을 겪은 미국의 침체기 동안 코카콜라는 위로에 초점을 맞춘 광고 캠페인을 시행했다. '코카콜라가 함께하는 삶(Coke Adds Life, 1976)', '코카콜라와 함께 웃어요(Have A Coke And A Smile, 1979)' 같은 문구와 더불어 일상 속에서 편안하게 미소를 짓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앞세웠다.
⑦1990년대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자 코카콜라는 세계화의 물결에 맞춘 전 지구적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북극곰이 이때 처음 등장했다. 북극에서 오로라를 보며 코카콜라를 마시는 북극곰들의 모습을 그린 영상을 필두로 공동체의 화합, 우정, 사랑 등을 주제 삼아 7년 동안 120편 이상의 광고를 선보였다. '코카콜라와 함께라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메시지 덕분에 코카콜라는 세계적인 상징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코카콜라는 1968년 한국 시장에 공식 진출해 1974년부터 국내에서 광고를 자체 제작하고 있다. 배우 사미자와 박원숙을 필두로 이종원, 심혜진, 채시라, 무한도전 멤버, 2PM, 김연아, 방탄소년단(BTS), 박보검, 최우식 등이 출연한 바 있다. 그런 가운데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코카콜라 광고로는 아무래도 심혜진, 이종원의 '난 느껴요! 코카콜라(1988)'를 꼽을 수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함께 현대적이고 도회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킨 이 광고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상을 그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광고의 성공 이후 심혜진은 영화배우로 전업해 각종 영화상의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