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희한한 일, 믿기지 않는 현상이 참 많습니다. 전국에 매서운 한파가 이어지던 지난 13일 경기 연천군의 한 폐터널에서는 보기 드문 자연현상이 조용히 펼쳐졌습니다. 바로 '역고드름'. 고드름이 땅에서부터 위로 쑥쑥 자라나는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죠.
이곳은 연천군 고대산 자락에 자리 잡은 구 경원선 터널입니다. 각종 물류 수송을 목적으로 일제강점기 건설됐다 6·25전쟁 당시 폭격을 맞아 터널벽과 천장 등에 균열이 생겼고, 이 균열을 타고 흘러내린 낙수로 인해 다양한 모양의 고드름이 생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05년 인근을 지나던 마을 주민에 의해 발견된 뒤 매년 12월부터 3월까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처럼 신기한 광경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바닥에서부터 자라나는 역고드름은 물방울의 규칙적인 낙하와 이를 순식간에 얼려 버릴 만큼 낮은 기온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즉, 일정한 높이의 천장 균열에서 작은 물방울이 떨어지고, 종일 영하권을 맴도는 강력한 한기에 의해 곧바로 얼어붙으면서 차츰차츰 키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석회암 동굴에서 흔히 보는 '석순'과도 비슷한 모양을 띠고 있습니다. 전국에 역고드름이 자라나는 곳이 몇 군데 있지만, 이곳 고대산 폐터널은 유난히 수직으로 높이 자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날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지방도를 나와 좁다란 농로를 따라 10여 분쯤 더 달리니 역고드름이 군락을 이룬 폐터널이 나타났습니다. 입구에 다다르자마자 그 정체를 드러낸 역고드름의 크기와 분포 규모에 압도당했죠. 위에서 내려오는 고드름과 바닥에서 올라오는 역고드름은 터널 입구로부터 100m가량 되는 길이에 걸쳐 대규모로 생성돼 있었습니다.
특히, 천장에 매달린 고드름이 크고 뾰쪽해 낙하로 인한 사고 위험이 적지 않아 보였는데, 관리를 담당하는 연천군 관계자도 안전 문제 때문에 터널 내부는 '절대 출입금지'라고 전해 왔습니다.
그렇다고 이때가 아니면 다시 보기 어려운 역고드름을 터널 밖에서만 겉핥기식으로 볼 수는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터널 밖에서 내부로 드론을 날려보내 촬영해 보기로 했습니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관람객이 없는 시간을 기다려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을 터널 안으로 날려보냈고, 기체가 고드름을 건드리거나 터널 벽에 부딪히지 않도록 평소보다 더 신중하게 조종하면서 동굴 내부를 살폈습니다.
얼마 후 모니터로 전해지는 광경은, 터널 입구에서 보이는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성인 남성 키보다 큰 초대형 역고드름부터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아기 역고드름까지,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역고드름이 바닥을 짚고 선 모습이 그야말로 경이로웠습니다. 맑은 수정 같기도 하고 거대 조각상 같기도 한 역고드름 군락은 한 세기에 가까운 역사적 흔적과 어우러지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역고드름을 접한 시민들도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날은 평일이라 관람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저마다 터널 입구에서 자연이 빚은 장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습니다. 의정부에서 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은 최영주(27)씨는 "역고드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보고 싶어 찾아왔다"면서 "분명히 고드름인데 밑에서부터 올라오는게 신기하다. 만화로 봤던 겨울왕국 같다"고 신기해했습니다.
물은 어떤 형태로도 변할수 있지만 절대 역류하는 법은 없다고 합니다. 아래에서 위로 자라는 역고드름도 알고 보면 중력에 의해 떨어진 물방울이 얼고 다시 떨어지고 또 얼어서 만들어진, 자연의 순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죠. 자연이 빚은 예술품 앞에서 그 섭리의 위대함을 실감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