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인물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56)씨에게 30억 원을 빌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굴지의 대기업 오너가 부동산 사업을 하던 김씨에게 손을 벌렸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금전 거래로 평가된다.
20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김만배씨와 정영학(54) 회계사의 대화 녹취록에는 조 회장이 김만배씨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씨는 2020년 3월 31일 정 회계사에게 “조원태가 홍(선근) 회장 통해 돈 빌려달라고 한 거야. 처음에는 주식을 사달라고. 그래서 해주려고 그랬어”라고 말했다. 기업 주식을 사달라고 했던 조 회장이 금전 대여를 요청하면서, 고심에 빠진 듯했다.
김씨가 "돈으로 뭘 어떻게 해"라고 하자, 정 회계사는 "개인적으로 (빌려줄 방법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김씨는 "안 되는 거지. 차라리 한진 주식을 사서 밑질 것 같으면 다른 거 샀다가 팔았다가, 뺐다가 팔았다를 해서... 정보를 아니까 밑지진 않는데"라고 말했다.
당시 조원태 회장은 부친인 조양호 전 회장 사망에 따른 상속세 납부를 위해 급전이 필요했다는 얘기가 업계에 파다했다. 2019년 4월 조 전 회장 사망 후 조원태 회장 등 자녀들은 상속세 2,700억 원을 신고하고,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5년간 여섯 차례에 걸쳐 상속세를 나눠내기로 했다. 하지만 조 회장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과 경영권 분쟁을 지속하던 상황이라 섣불리 보유 주식을 처분할 수도 없었다.
녹취록에는 조 회장과 김씨가 실제 금전 거래를 했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조 회장이 대여를 요청했다는 시점으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21년 7월 23일, 조 회장은 주식근질권 행사를 통해 김씨에게 실제 30억 원을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이 자신의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고 김씨에게 돈을 빌렸다는 얘기다. 조 회장은 3주 뒤인 지난해 8월 12일 김씨에게 빌린 돈을 모두 갚았다고 한다.
검찰 역시 '정영학 녹취록'을 통해 조 회장과 김씨 간 자금이 오간 정황을 파악하고, 정확한 거래 경위를 살펴봤다. 김씨는 검찰에서 "지인으로부터 조 회장이 자금이 필요하니 돈을 빌려줄 수 있겠냐는 말을 듣고, 조 회장과의 관계 유지가 회사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녹취록 내용을 볼 때, 김씨가 말한 지인은 홍 회장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공교롭게 조 회장이 녹취록에 등장하던 시점에 홍 회장도 김씨와 금전 거래를 한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홍 회장 역시 검찰 조사에서 “차용증을 써서 김씨 돈을 빌린 뒤 1, 2개월 안에 다 상환했다”며 “대장동 사업과는 무관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조 회장과 김씨 사이의 금전 거래에서 뚜렷한 위법 정황은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그룹 측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조 회장이 상속세 납부를 위한 급전이 필요해 지인에게 부탁했는데, 지인이 홍 회장을 통해 김만배씨에게 자금을 빌려 조달했다”며 “한 번의 금전 거래만 있었고, 원금과 이자를 모두 상환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조 회장은 홍 회장 및 김씨와는 일면식도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 측은 본보에 “변호인이 얘기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홍 회장은 수차례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