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민의 B:TS] 메타버스 시대 속 가상인간, 롱런을 꿈꾼다면

입력
2022.01.21 09:00


편집자주

[홍혜민의 B:TS]는 'Behind The Song'의 약자로, 국내외 가요계의 깊숙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 드립니다.

문득 '사이버 가수' 아담의 추억이 떠올랐다. 최근 사회 전반은 물론 연예계까지 들썩이게 만든 메타버스와 가상인간 열풍을 지켜보면서다.

어린 시절 문구점 한켠을 장식했던 아담의 MD를 구매하며 팬심을 키웠던 추억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 한켠에 아련하게 남아있다. 본격적으로 메타버스 시대에 접어드는 상황 속 자연스럽게 아담이 떠올랐던 것 역시 그 때의 기억 덕분이었다.

90년대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가상인간이라는 파격적인 시도로 데뷔했던 아담은 20만 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실제 팬클럽도 창설됐을 정도의 인기였다. 하지만 이후 실체가 없는 가상인간이라는 한계와 투입되는 비용 대비 적은 수익 창출 등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났다. 메타버스라는 이름의 3차원 가상 세계가 또 다른 일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지금,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한 가상인간들이 연예계로 돌아왔다. 그 시절 아담과 마찬가지로 신선한 시도에 가상인간 연예인을 향한 화제성은 높았다.

하지만 이들이 단순한 '반짝 스타'를 넘어 또 하나의 연예계 트렌드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실제 스타와 같은 팬덤의 형성이다. 단발성의 흥미가 아닌 지속적인 활동의 기반이 될 수 있는 팬덤 구축은 연예계 성공의 필수 조건이다. 아무리 메타버스에 익숙해진 시대라지만 과연 실체가 없는 가상인간이 유의미한 수준의 팬덤을 모으는 것이 가능할까.

2022, 국내 가상인간 현 주소는

지난해 가상인간의 연예계 진출에 대한 가능성을 가장 크게 대두시켰던 것은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의 등장이었다. MZ세대가 선호하는 얼굴 생김새와 수백개의 표정들, 대역을 통해 촬영된 신체를 3D 모델링 기술을 통해 조합해 만든 가상인간인 로지는 SNS와 화보, 광고 등을 통해 성공적으로 입지를 넓혔다.

유심히 살펴보지 않는 이상 실제 사람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한 생김새와 스타성 구축을 위한 정교한 세계관 구성, 활발한 SNS 소통은 메타버스 세계관에 익숙한 MZ세대에게 거부감 없이 스며들었다.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4만여 명이던 로지의 SNS 팔로워 수는 올해 1월 기준 11만3,000명을 돌파한 상태다.

가상인물이라는 특징은 단순히 로지라는 존재의 화제성에만 힘을 실은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19 시국에서도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플레이스를 활용한 광고 진행이 가능하다는 점 △다양한 협업 과정에서 실제 스타에 비해 보다 수월한 절차를 거쳐도 된다는 점 △변화하는 대중의 니즈와 트렌드를 빠르게 흡수해 장시간 이미지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는 점 △사생활이나 과거 등으로 인한 문제 발생 리스크가 없다는 점은 가상인물이 가진 확실한 강점이었다.

로지의 성공과 화제 속 가상인간들의 연예계 데뷔는 가속화 됐다. 인플루언서로 시작한 로지를 넘어 이제는 가상인간들이 배우와 가수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패션 화보 공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버추얼 아티스트 한유아는 향후 음악, 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특히 한유아의 제작사는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하이브로부터 4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던 바, 하이브의 자본으로 날개를 단 한유아가 가상인간 시장에서 선보일 활약에 기대가 모이는 중이다. 또 해당 회사는 디지털 아이돌 연습생인 정세진까지 보유하며 본격적인 가상인간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대기업도 가상인간 진출에 눈을 돌린 상태다. 래아가 그 주인공이다. 래아는 대기업과 미스틱스토리의 업무협약을 통해 뮤지션 데뷔에 나설 예정이다. 래아의 노래와 목소리는 미스틱스토리의 대표 프로듀서인 윤종신이 직접 프로듀싱을 맡는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역시 지난해 일찌감치 넷마블에프앤씨의 자회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와 협력해 가상 아이돌 그룹을 론칭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상황이다.

메타버스 시대 속 가상인간 스타, '찐' 스타 가능할까

가상인간이 연예인들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는 말이 더 이상 허상만은 아닌 셈이다. 쏟아지는 가상인간들과 이들을 강력하게 푸시하고 나선 대기업들의 자본력, 엔터업계의 노하우가 낼 시너지는 분명 상당 수준의 파급력을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상인간이 연예계에서 제대로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팬덤의 구축이다.

비단 가상인간 뿐만 아니라 연예계에서 롱런하는 스타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조건은 탄탄한 팬덤이다. 단발적으로 화제를 모으거나 일부 세대에게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 정도로 일시적 인기는 기대할 수 있으나, 이는 치열한 연예계에서 성공하는 방법이 되기엔 역부족이다. 특히 가상인간은 연예계의 새 도전 영역인 만큼 향후 활동을 지지해 줄 팬덤 형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실체가 없다는 한계를 지닌 가상인간이 기존 스타들 정도의 팬덤을 낳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메타버스 세계관에 대한 MZ세대의 신선함은 곧 가상인간에 대한 화제성으로 이어졌고, 덕분에 SNS 팔로워 등은 빠르게 늘어났지만 과연 이러한 반응을 팬심으로 연결지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는 것이다.

또한 (코로나19 시국처럼 예외의 경우를 제외하곤) 대면을 통해 팬들과의 유대감을 쌓고, 이로 인해 단단한 팬덤을 쌓는 스타들과 달리 가상인간들은 비대면 콘텐츠로만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역시 팬덤 형성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란 우려를 낳는다. 또한 이러한 지점에서 팬덤 형성 이후에도 팬들의 이탈이 상대적으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까란 기우도 더해진다.

물론 일각에서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는 팬덤이 존재한다는 점을 근거로 가상인간의 성공을 전망하기도 한다. 실제로 일부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 역시 가상의 존재로 비대면 콘텐츠, MD 등으로만 팬들을 만나지만 실제 스타 못지 않은 팬덤의 충성도와 결집력을 자랑하곤 한다. 하지만 이같은 문화가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뿌리깊게 자리잡지 않은 상태라는 점은 앞으로 가상인간 스타들이 고민해 나가야 할 지점이다.

이와 관련해 한 연예계 관계자는 "기술적으로는 가상인간 스타들이 상당한 발전을 이룩한 상황이지만, 이들을 가수나 배우 등 입지가 확실한 스타로 양성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팬덤 형성이나 이탈 등에 대한 고민도 상당하지만, 기본적으로 주요 타깃이 될 MZ세대가 메타버스 세계관에 익숙하게 성장해왔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 우려의 시선도 많지만 어떤 식으로든 연예계의 미래에는 가상인간, 메타버스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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