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수괴' 아돌프 히틀러 집권 시절 '반역죄'와 동일하게 취급받으면서 만들어진 '낙태' 관련 법이 약 80년 만에 폐지될 전망이다.
독일 공영 도이치벨레(DW)와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은 18일(현지시간) 마르코 부슈만 독일 법무장관이 전날 '낙태 광고 금지'를 골자로 한 형법 '219a 조항'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슈만 장관은 “아무 사람이나 낙태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 게시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격이 있는 의료인들이 낙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이미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의 상황은 충분히 어렵기 때문에 더 어렵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낙태와 관련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의미다.
낙태 광고 금지법 폐지는 독일이 지우고자 하는 시기인 나치 시대 유산을 정리한다는 의미가 있다. 히틀러가 이끈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은 집권 직후인 1933년 낙태를 한 여성을 실형에 처할 수 있게 하는 등 낙태를 금지하고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실제 히틀러는 '게르만족의 번성'을 꿈꾸며 출산을 독려했다. 이번에 폐지되는 형법 219a 조항도 그 시절 만들어진 조치 중 하나다. 가디언은 "당시 나치 정권이 ‘독일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이런 조항을 신설했으며, 낙태를 반역과 동일시했다"고 설명했다.
독일 사회는 그간 219a 조항 폐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폐지 목소리가 높았지만 기독민주당(CDU)ㆍ기독사회당(CSU) 연정이 기독교적 보수주의에 바탕을 둔지라 쉽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2019년 해당 조항 폐기가 추진됐지만 결국 무산됐다.
하지만 기민당 소속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물러나고 사회당(SPD)과 녹색당, 자유민주당(FDP)이 꾸린 ‘신호등 연정’은 이미 연정 구성 협상에서부터 해당 조항을 폐기하기로 합의했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이미 형법 법률 개정안 초안은 만들어진 상태로, 관련 연방 부처들과 최종 조율 중이다. AP통신은 이번 법 개정이 숄츠 연정이 계획한 진보적 사회 정책 중 첫 번째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법률 개정은 낙태 광고 제한만을 폐지할 뿐 낙태를 허용하는 수준까지 변경되지는 않는다. 독일은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임신 초기 12주 이내이거나, 그 이후라도 임신한 여성의 생명이 위험하거나 임신이 심각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손상을 초래할 수 있는 경우 등 특정 상황에서는 처벌받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법 폐지는 특정 상황에 처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의료인의 낙태 광고를 허용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