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회사로부터 당황스러운 통보를 받았습니다. 갑자기 회사가 폐업을 하게 됐다는 얘기였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경영이 어려워지고 오너인 대표이사 신변에도 이상이 생겨서 더 이상 회사를 운영하기 힘들게 됐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고 주변에도 알아보니 회사가 폐업을 하면 페업일 기준으로 자동퇴직 처리가 된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회사가 문 닫기 전에 수당 같은 것들을 다 받아내야 한다는 겁니다. 아직 회사는 정확한 폐업 날짜를 말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내일이라도 갑자기 문을 닫아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앞섭니다. 이런 일이 처음인지라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막막하고요. 생각나는 것들을 여쭤보겠습니다.
①회사는 폐업 때문이라지만, 당하는 제 입장에선 해고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해고에 준하는 법적인 보호를 받거나 회사에 요구할 수 있는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②퇴직금은 어떻게 되는 건지도 알고 싶습니다. 2020년 4월에 입사해 작년 11월에 연봉을 인상하는 계약서를 새로 작성했는데, 이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퇴직금을 계산하게 되는 건지요. 계약서 작성시에 '퇴직금 포함'이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이렇게 되면 계산법이 달라지는 건가요.
③작년 말 기준 연차가 20개 정도 남았습니다. 미사용 연차는 수당으로 받을 수 있지 않냐고 회사에 문의했더니 '주 4일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연차가 1년이 지나면 사라진다'고 합니다. 입사 후에 계속 주 4일제를 시행하다 작년 12월부터 주 5일제로 바뀌었거든요. 그 사이에 회사가 연차사용촉진제도를 적용한 적은 없었습니다. 퇴직금 받을 때 미사용 연차를 수당으로 받을 수 있을까요. 만약 주지 않는다면 신고를 해야 할까요. 신고를 한다면 미사용 연차를 어떤 식으로 증명해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④작년 5월쯤부터 출근시간 30분 전 조기 출근을 시행하고 있는데, 회사 측에서는 "근무시간 전후 30분은 근로기준법에도 예외로 나와 있다"며 급여를 줄 수 없다고 합니다. 회사 업무의 특성상 새벽과 야간, 주말에 근무한 적이 많았는데 이에 대한 급여도 1.5배 등으로 더 청구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A씨(20대 여성·의류업체 직원)
갑작스러운 회사의 통보에 많이 놀라고 당황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회사가 폐업을 하는 경우가 과거보다 많아졌는데요. 관련 규정들을 제대로 알지 못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하나씩 답변을 드릴 테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①폐업도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여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으로 해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 26조에는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적어도 30일 전에 예고를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30일 전에 예고를 하지 않았다면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 즉 해고예고수당을 지급해야 합니다. 다만 여기엔 예외 조항이 있는데 △근로 기간이 3개월 미만이거나 △천재지변 등으로 인해 사업이 불가능한 경우 △근로자가 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재산상 손해를 끼친 경우입니다.
A씨 회사의 폐업 이유를 '천재지변 등으로 사업이 불가능한 경우'라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따라서 회사가 폐업일 1개월 전에 미리 해고예고 통지를 하지 않을 경우 A씨는 해고예고수당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적지 않은 금액이니 회사가 폐업이 임박한 시점에 날짜를 공지한다면 반드시 수당 지급을 요구하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혹시나 해서 첨언드리면, A씨와 회사 측과의 근로계약은 폐업일, 즉 회사가 해산 및 청산절차를 완료하여 법인격이 없어지는 시점까지 유효합니다. A씨가 원한다면 폐업일까지 계속 근무를 할 수 있고, 계약서대로 임금을 청구할 권리가 유지된다는 얘기입니다.
②퇴직금은 1년 이상 근무하고 퇴직한 근로자에게 '평균임금의 30일분’ 이상을 사업주가 지급하도록 돼 있습니다. A씨의 경우 작년 11월에 새로 쓴 연봉인상계약서를 기준으로 퇴직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다만 ‘퇴직금 포함’이라는 계약서상 문구에 대해서는 사실관계 확인이 좀 더 필요해 보입니다. 추정을 해보자면 예를 들어 회사가 월급 250만 원을 직접 지급하고 1년이 지나면 250만 원을 퇴직금 계좌로 입금해 주는 방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경우 연봉인상계약서가 근로기준법의 기준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면 유효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평균임금에는 야간근로수당 등이 포함되니 이 부분도 확인을 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만약 지급받지 못했던 수당이 있다면 이는 임금체불에 해당돼 3년의 시효가 지나기 전에 차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퇴직금 역시 퇴직 전 3개월을 기준으로 정당하게 재산정한 평균임금에 따른 퇴직금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③우선 '주 4일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1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사측의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미사용 연차를 수당으로 받을 수 있고, 안 주면 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에게 진정을 제기하시면 됩니다. 입증 방법에 제약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내 전산망에 미사용 연차 기록이 있으면 이를 캡처해 저장하거나 회사에서 보관 중인 문서를 확보해 두는 방법이 있습니다. 잔여연차 통지 문자가 있다면 이것도 입증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발생한 연차가 몇 개인지를 두고도 다툼이 있을 수 있으니 출근율이 80%를 넘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도 확보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증거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 회사가 일체의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사정이라도 근로감독관에게 진술하시면 됩니다.
④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 시간은 모두 근로시간에 해당하므로 그 시간에 상응하는 임금의 청구가 가능합니다. 공지사항으로 구체적으로 30분 조기출근, 30분 늦게 퇴근을 지시하였다는 증거가 있으므로 당연히 청구할 수 있습니다. 밤 10시~새벽 6시 사이의 근로시간에 대해서는 야간근로수당으로 통상임금의 0.5배를 추가로 청구할 수 있고, 주말근무에 대해서는 8시간 이내인 경우 통상시급의 1.5배를, 8시간 초과 부분에 대해서는 통상시급의 2배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근로계약서에 대체휴일 제도에 대한 내용이 있고 주말근무에 대해 평일에 대체휴일을 부여했다면, 그 부분은 추가임금청구를 할 수 없다고 판단됩니다. 이 경우 주말근무 8시간을 명하였다면 1.5일의 대체휴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점도 숙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면 A씨가 위에 언급한 사안들에 대해 추가적인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권리가 있다는 것과 실제로 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의미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회사가 폐업을 해버리면 권리가 있더라도 이를 강제해서 집행할 대상이 사라지는 것이어서 현실적으로 금전을 받아내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사가 폐업을 하기 전에 최대한 권리를 행사해야 하고, 폐업 후에는 복잡한 법적인 절차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이 직접 대응을 하는 것보다는 가능하다면 도산 절차가 문제된 사건을 수행한 경험이 있는 노무사 또는 변호사를 방문해 상담을 받아보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며 말 못 할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해결책이 궁금하시다면 누구라도 제보를 해주세요. 이메일(119@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직장갑질119 김기동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