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씨의 ‘7시간 통화’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 두 가지 그림자를 드리웠다. 윤 후보 부부가 무속에 의지한다는 의심을 부채질했고, 김씨가 성폭력 피해자를 2차 가해했다는 비판을 샀다. 윤 후보에겐 상당한 리스크다.
윤 후보는 두 가지 악재에 철저히 분리 대응하는 태도를 취했다. 무속 의혹의 진원지인 선대본부 산하 네트워크본부를 18일 통째로 해체하며 적극적으로 수습했다. 성폭력 2차 가해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표의 유불리'를 따진 결과다.
윤 후보는 지난해 손바닥 ‘왕(王) 자’ 논란, 천공스님과의 인연 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나는 영적인 사람이다. 도사들과 삶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등 16일 공개된 김씨의 '7시간 통화' 중 발언이 무속 논란에 다시 기름을 부었다. 17일엔 건진법사라는 무속인이 선대본부 네트워크본부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윤 후보는 하루 만인 18일 네트워크본부를 없애버렸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께서 오해의 소지를 갖고 계신다면 빠른 조치를 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7시간 통화'에서 “(진보 진영의 미투는) 돈을 안 챙겨주니까 터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피해자인 김지은씨 등 모든 것을 걸고 미투(성폭력의 사회적 폭로)에 나선 피해자들을 모욕한 것이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선대본부 여성본부 고문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가 페이스북을 통해 김씨 대신 사과할 정도로 위중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윤 후보도, 국민의힘도 사과하지 않았다. 윤 후보는 18일 기자들과 만나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17일 “어찌 됐든 많은 분들의 심려를 끼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포괄적 사과를 한 것보다 더 나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차 가해가 아니다"라고 김건희씨를 엄호했다. 이 대표는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사적인 전화 통화를 가지고 2차 가해로 표현하는 것은 성립하기 쉽지 않다”고 일축했다.
윤 후보의 이중 대응은 '표 계산'의 결과로 풀이된다. 무속 논란은 국민의힘 집토끼인 보수 개신교계나 중도층의 반감을 살 수 있는 예민한 문제다. 윤 후보는 ‘왕(王) 자’ 논란 당시 성경책을 들고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아 예배를 보는 모습을 공개한 바 있다.
반면 미투 폄훼 발언에 분노하는 여성 유권자들은 어차피 윤 후보의 적극 지지층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윤 후보가 요즘 가장 공을 들이는 '20대 남성’을 의식했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윤 후보가 김씨의 미투 발언에 사과하는 순간, '안티 페미니즘' 여론을 주도하는 20대 남성들이 또다시 윤 후보에게 등을 돌릴 공산이 크다. 여성가족부 폐지, 무고죄 처벌 강화 등 20대 남성 타깃 공약을 낸 '공'이 무너질 수 있기에 윤 후보가 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