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절약하는 음악 감상법 아시나요

입력
2022.01.19 04:30
22면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격주 수요일마다 전합니다.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시작됐을 때, 세계 곳곳의 극장 문이 닫히고 수없이 많은 음악회가 취소됐다. 공연을 준비해 온 연주자들의 시간, 예술적 결과물, 공연 관계자들의 수고, 공연을 기다렸던 관객들의 설렘도 함께 날아가 버렸다. 온라인 콘서트가 대체해주는 범위가 있지만, 한 공간 안에서 울리는 소리의 떨림, 몸으로 느끼게 되는 음압, 현장의 긴장감을 경험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음악회의 ‘공간’이 문제인가 싶지만, 결과적으로 그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이다.

음악은 그 음악을 들었던 때의 경험과 정서에 대한 기억을 남긴다. 그 기억이 쌓이다보면 어느새 취향이 만들어지고, 좀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이것을 소유하려 하게 된다. 음악은 듣는 시간과 정성을 할애한 사람의 온전한 소유가 된다. 소유하는 데 큰돈이 들지 않으니 이 취향의 비용장벽은 매우 낮은 셈이다. 24시간 열려 있는 귀를 통해 전달되는 음악은 예비 과정도 필요 없다. 때로는 시각적인 자극보다 더 즉각적이다. 듣는 순간 그 음악과 현재를 기억하게 되고, 언제든 그 음악을 다시 들었을 때 특정한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특정 음악과 특별히 만나는 시기가 있다. 취향이 만들어지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취향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온 작가 윤광준은 음악과 취향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음반을 듣든, 공연장을 가든 하나라도 오래 새기고 음미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이 빠지면 음악 듣고 교양 쌓았다 생각하기 쉽죠. 많은 것을 한 번에 알려고, 빨리 누리려고 하지 말아요. 하나를 들어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면 돼요. 그다음은 어디로 가야 할지 본인이 알게 됩니다.”

음악과 관계된 모든 행동은 ‘시간을 절약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 인터넷 라디오는 1.5배속, 2배속, 심지어 8배속으로 돌려보고 들을 수 있지만, 음악은 불가능하다. 시간을 단축해버리는 순간, 음악은 뭉개지고 실체가 없어진다. 음악은 시간을 단축해서는 감상할 방법이 없다. 절대적인 시간만큼 듣고 감동하고 그게 쌓이는 만큼 내 것이 된다.

클래식 음악 얘기를 하고 싶어 이렇게 긴 '썰'을 풀었다. 클래식 음악 얘기가 나오면 ‘잘 몰라서…’라는 반응부터, 명반이나 작품 번호를 다 꿰고 얼마나 많은 음악회를 어디까지 찾아가봤는지 얘기하느라 바쁜 반응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음악가나 애호가, 음악 산업계 종사자에게 요즘 좋아하는 음악을 물으면 수십 개의 다른 답이 나온다. 공통분모는 있겠지만 즐기는 분야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말하는 데 눈치 볼 이유가 있나. 모두가 베토벤 교향곡 5번과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얘기할 필요가 없다. 좋아하는 음악의 작품 번호를 틀리게 말해도, 아예 몰라도 상관없다. 나만의 지도를 그리며 좋음의 지경을 넓혀 가면 된다. 바흐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그것으로 수준을 가늠하는 사람 앞에서 주눅들 필요가 없다. 그쪽이 더 하수일 수 있다.

클래식 음악 취향은 좋아하는 마음과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다. 연애하는 것처럼 즐거움의 순간을 쌓아가면서 관계도 단단해진다. 관계가 단단해지기 전에 시간을 재촉하려는 연애가 쉽게 깨지는 것처럼, 음악 취향을 돈과 지식으로 장착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헛헛함만 남을 것이다. 조급한 마음만 내려놓는다면 클래식 음악은 언제든 내 것이 될 수 있다. 어차피 수백 년 전부터 들어온 음악이니 유행도 없고, 누가 좀 더 많이 들었다고 해도 경쟁할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게 되면 내 것, 아니어도 그 소유를 뺏기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객원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