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형이냐, 정계은퇴냐… 기로에 선 ‘불사조’ 네타냐후

입력
2022.01.17 18:22
부도덕 혐의 '변수'… 인정 시 7년간 출마 금지
네타냐후 정계 은퇴 시 연립정부 붕괴 가능성

숱한 위기에도 총 15년간 장기 집권해 ‘불사조’라 불리던 철권 통치자 베냐민 네타냐후 전 이스라엘 총리가 정계 은퇴 기로에 섰다. 지난해 실각한 뒤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아 왔는데, 중형이 유력해지자 ‘유죄 인정 조건부 감형 협상(플리바겐)’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형 거래가 성사될 경우 총리직 재도전은 완전히 물 건너간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16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네타냐후 전 총리가 일부 혐의를 인정하는 대가로 실형 대신 지역사회 봉사 명령으로 대체하는 협상을 아비차이 만델블리트 검찰총장과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주 안에 합의서에 서명할 것이라는 추측도 여러 언론에서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최대 변수는 ‘부도덕’ 혐의를 인정할지 여부다. 이스라엘 법은 ‘부도덕’ 혐의로 유죄를 받을 경우 7년간 선출직 출마를 금지한다. 올해 73세인 네타냐후 전 총리가 7년 뒤 정계에 복귀한다고 해도 나이가 80세라, 그에겐 사실상 정치적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이미 정권 재탈환 선언까지 한 터라 더욱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네타냐후 전 총리는 총리 재임 중이던 2020년 1월 세 가지 개별 사건과 관련해 각각 사기, 배임, 뇌물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네타냐후 전 총리가 재계와 언론계, 할리우드 유명 제작자로부터 수십만 달러 상당 뇌물을 받았다고 적시했다. 또 포털사이트에 부정적 보도를 노출하지 않는 대가로 통신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와 이스라엘 최대 일간지에 정부 홍보성 기사를 싣는 대신 경쟁지 발행 부수를 줄이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네타냐후 전 총리는 이 모두를 부인하며 “사법 쿠데타”라고 주장해 왔다.

이스라엘 현지에선 협상 타결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의견도 없지 않다.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만델블리트 검찰총장 임기가 2주 뒤인 이달 31일 끝나기 때문에 협상도 임기 종료와 함께 소득 없이 끝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니잔 호로위츠 이스라엘 보건장관은 트위터에 “개인적 목적을 위해 민주주의의 기반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무너뜨린 인물은 플리바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폴리바겐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검찰총장 관저 앞에 모여 농성을 벌이는 등 여론도 악화되고 있다.

일각에선 플리바겐 결과에 따라 이스라엘 정계 개편이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네타냐후 전 총리는 지난해 총선에서 1당이 되고도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해 권좌를 잃었다. 그는 1996년 3년간 첫 임기를 마치고 2009년 재집권해 12년 2개월간 재임, 총 15년 2개월간 집권한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다. 당시 좌파, 우파, 중도, 아랍계를 총망라한 13개 정당이 ‘정권교체’ 기치 아래 연정을 출범시키면서 네타냐후 정권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반(反) 네타냐후’ 말고는 공통점이 없는 허약한 연대라, 네타냐후 전 총리의 정계 은퇴가 확실해지면 연정도 무너질 수 있다. AP통신은 “네타냐후 전 총리가 물러나면 민족주의적 정당들은 연정에서 탈퇴하고 이념에 따라 이합집산하게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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