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줄 알았는데”… 제주 영리병원 논란 다시 불 붙나

입력
2022.01.17 15:41
대법원, 개설 허가 취소 위법 원심 뒤집고 녹지 측 손 들어줘 내국인 진료 제한 관련 소송 남아 시민단체들, 대법·원 전 지사 규탄



국내 1호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제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개설 허가 취소가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영리병원 논란이 다시 불이 붙을 전망이다.

17일 제주도 등에 따르면 대법원 특별1부는 지난 13일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가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취소처분 취소' 소송과 관련해 제주도의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했다. 심리불속행은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사건은 더이상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을 뜻한다. 제주도의 패소 판결이 확정되면서 영리병원 개설에 따른 판단이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 셈이다.

제주도는 앞서 2018년 12월 외국인 의료 관광객을 대상으로 녹지병원을 운영하도록 하는 조건부 개설 허가를 내줬음에도, 녹지 측이 3개월 넘게 해당 병원을 개원하지 않자 2019년 4월17일 의료법에 따라 기존 허가를 취소했다. 이에 녹지 측은 제주도가 개설 허가 신청을 받은 뒤로부터 15개월이 2018년 12월5일에야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위법한 조건을 붙여 허가를 내 줬고, 이로 인해 사업계획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주장하며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원심 재판부는 제주도의 조건부 개설 허가 처분에 중대 하자가 없는 점, 녹지병원 사업계획서에 외국인 의료 관광객이 진료 대상으로 명시된 점, 녹지병원에 응급의료시설이 없는 점 등을 들어 제주도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녹지 측이 내국인 이용을 배제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했던 점, 실제 녹지 측이 허가 조건 변경과 인력 상황 변동으로 사업계획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 있던 점 등을 들어 녹지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최종적으로 대법원도 녹지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 됐던 영리병원 논란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당장 영리병원이 들어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현재 이번 소송과 별개로 병원 개설 허가 조건인 ‘내국인 진료 제한’과 관련해 녹지 측이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의료기관 개설허가조건 취소 소송’이 1심에서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또한 녹지 측이 지난해 말 녹지병원의 지분 80%를 우리들리조트의 자회사인 디아나서울에 넘긴 상황이어서 영리병원을 개설을 재추진할지도 미지수다. 디아나서울은 당시 녹지제주와 공동으로 비영리 의료법인을 설립해 녹지국제병원을 암 치료, 난임 치료 등을 위한 병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녹지 측이 영리병원 개설 대신 제주도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설 가능성은 남아있다.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판결과 관련해 대법원을 강력 규탄했다. 제주 3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의료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 운동본부’는 이날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녹지국제병원은 내국인 진료 제한을 조건으로 영리병원을 열 수 있게 됐다”며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판결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을 내팽개친 대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원 전 지사에 대해서도 “원 전 지사는 2018년 12월 영리병원 허가를 강행하며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했었다”면서 “정치인으로서 실날 같은 양심이 남아 있다면 지금 당장 정계를 떠나라”고 촉구했다.

김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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