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미국ㆍ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간 안보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러시아의 위협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를 제한적으로 침공할 가능성, 미국 코앞에 극초음속 핵미사일을 배치하거나, 사이버 공격에 나서는 시나리오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군사 행동 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지상 병력 이동 규모를 고려할 때 가장 명백한 시나리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고 전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체를 점령하는 시도보다는 러시아 접경인 동부 도네츠크 주변으로 군대를 보내거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인근 드네프르강까지만 진격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미 국방부도 러시아 침공 범위에 대해 5, 6가지 다른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미 러시아군 추가 탱크와 병력을 실은 기차가 동부 시베리아 등에서 우크라이나 쪽인 서부로 이동하는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여럿 올라왔다. 러시아 국영TV에도 우크라이나가 동부 지역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자들을 공격할 수 있다는 논평도 잇따르고 있다.
러시아군 예비역 중장인 예브게니 부진스키는 NYT 인터뷰에서 “한 줄로 늘어선 탱크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러시아는 공중에서 모든 우크라이나 기반시설을 파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군이 공습을 거쳐 단기간 내 승리를 노리는 ‘제한적 전쟁’을 펼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러시아는 지난해 후반부터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10만 이상의 병력을 배치하고 실탄 사격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땅이 얼어 있어 탱크 등 기동병력 이동이 용이한 2월 이전 겨울에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아지고 있다. 러시아 위장 작전부대가 우크라이나 내전에 나선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을 거짓으로 공격한 뒤 이를 구실로 군사행동을 시작할 것이라는 우려도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러시아 고위 외교관은 미국ㆍ나토와의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는 불특정 무기 시스템을 불특정 장소에 배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전술 핵무기나 극초음속 미사일을 미국 가까운 지역에 배치해 압박 강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앞서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교차관은 13일 러시아 방송 인터뷰에서 “서방 국가들과의 회담이 결렬되고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 경우 우리는 쿠바와 베네수엘라에 군사 인프라를 파견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 타격권 내에 미사일을 배치하겠다는 의미로, 1962년 소련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불사하겠다는 압박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워싱턴에서 가까운 거리에 잠수함 기반 극초음속 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워싱턴에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NYT는 또 러시아가 미국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을 재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사이버 공격의 경우 러시아 정부 책임을 부인하기 쉽고, 혼란을 손쉽게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미 국토안보부는 러시아가 미국 전력망에 이미 악성코드를 설치해왔다고 경고해왔다. 특히 러시아 기반 해커조직이 지난해 5월 미국 최대 송유관 관리업체인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을 해킹해 미국 동부에 주유대란이 벌어지는 등 전력도 있다.
러시아 정보기관 연방보안국(FSB)과 경찰은 14일 랜섬웨어를 이용한 해킹 조직 구성원 14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NYT는 “백악관은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이번 해커 체포는) 러시아 정부가 사이버 전쟁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여기에 러시아가 중국과 밀착하는 것도 미국에는 민감한 변수다. 푸틴 대통령은 다음 달 초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직접 참석하기로 했고 중러 양국은 합동 군사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미 CBS 인터뷰에서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추가 침공한다면 우리는 동맹과 단합해 제재를 가할 것”이라며 “가혹한 경제적 후과가 있을 것이고 러시아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