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진심인 10대들의 행동... 어른은 "그런다고 안 바뀌어"

입력
2022.01.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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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가드닝, 돈 대신 병뚜껑 받는 장터...
대나무 칫솔, 초등생에 환경 교육하기...
어른보다 환경 위해 더 앞장서는 청소년들
정규 환경수업은 부족하고 정치권은 방관

지난해 봄 경남 통영의 고등학생 김태영(18)양과 친구들은 매주 ‘게릴라’가 됐다. 챙 넓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이 혁명가들이 손에 쥔 것은 다름 아닌 호미와 꽃 모종. 모이는 장소는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는 길가다.

이들이 실천한 건 ‘총 대신 꽃을 들고 싸운다’는 게릴라 가드닝. 도심 속 방치된 공간에 예고 없이 식물을 심어 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다. 학교 앞 버스정류장 주변 길가부터 통영의 유명 관광지인 동피랑 마을까지. 쓰레기가 있고 꽃을 심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어디든 이들의 활동무대다.

“예전에는 버스정류장에 쓰레기 봉투가 있는데도 그냥 바닥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어요. ‘꽃을 심어 두면 사람들도 마구잡이로 쓰레기를 버리진 못하지 않을까' 생각해 꽃을 심기 시작했어요. 저희가 계속 정원을 꾸미니까 사람들이 궁금해하더라고요. 쓰레기도 점점 줄어들었어요.” 태영양의 말이다. 그가 활동하고 있는 충렬여고의 환경동아리 CSI 회원들은 약 6년째 게릴라 가드닝을 이어 오고 있다.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는 당연한 구호를 외치는 대신, 쓰레기장을 없애야 직성이 풀리는 청소년들이다. 멸종위기 식물인 목화를 살리겠다며 1년 내내 농사를 짓고(천안 병천중), 지역 카페를 직접 방문해 '일회용품을 쓰지 말아 달라'고 호소한다(충북 단양중).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행동하자고 호소하기 위해 '지구 장례식'을 치르는 대담한 퍼포먼스도 서슴지 않는다(파주 문산수억고).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환경을 위해 행동하는 청소년 동아리 5팀을 온라인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미래를 누구보다 어둡게 전망하지만 비관하기보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점점 빨라지는 기후위기 시계를 멈춰 달라며 세상에 자신을 내던진 그레타 툰베리와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이들의 동료다.

나의 근심이 된 '지구의 위기'

충남 천안 병천중학교의 환경동아리 지구방위대 학생들은 2020년과 2021년 이어진 장마를 잊지 못한다. 특히 2020년 여름 천안에는 마치 하늘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천안 시내 곳곳이 말 그대로 물바다가 됐다.

길예림(16)양은 “그런 홍수는 살면서 처음 겪어 보는 일이라서 정말 이상 기후가 됐구나, 와닿았어요”라고 회상했다. 김슬아(16)양은 지난 여름의 도쿄올림픽이 기억에 남는다. 고향에는 집중호우가 두 번이나 왔는데 이웃 나라는 이상고온을 겪는 게 의아했기 때문이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이 더위 때문에 실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놀랐어요.”

11월 중순인 수능 날이면 반복되던 수능 한파가 사라진 것도, 12월을 맞아 꺼내 입은 롱패딩이 너무 더워 던져 버리는 날이 많아지는 것도 느끼고 있다.

충북 단양군 단양중학교 환경동아리 세단의 박근혜(16)양은 “진짜 어디 하나 지구가 안 아픈 곳이 없잖아요. 누가 들으면 중2병 같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욕심 때문에 멸종이 되는 건 아닐까 혼자 생각한 적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충렬여고 김태은(18)양은 "인터넷에서 기후위기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를 자주 접하다 보니 ‘이제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더라고요"라고 했다. 그는 한때 이런 ‘기후 우울’로 상담을 받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고민만 하지 말고 실천을

그래서 환경동아리 활동은 이들에게 중요하다. 태은양은 “이론 연구보다는 행동과 실천을 하고 싶었고, CSI가 바로 그런 곳이어서 가입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천 작전여고에 입학하자마자 환경동아리 자원순환리더에서 활동해온 엄영서(17)양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지구가 인간의 욕심을 감당할 날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일단 누군가가 (기후변화 대응을) 시작하면 처음부터는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모두가 관심을 가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도전해보고 싶더라고요.”


자원순환리더 회원들은 지난 1년간 플라스틱 반대 운동부터 미래 식량 연구, 해양생물 보호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지난해 가을 열었던 교내 벼룩시장 ‘자순이네 상점’이다.

상점에서는 학생들에게 기부받은 물건을 판매했다. 그런데 이걸 사려면 돈 대신 플라스틱 병뚜껑을 내야 한다. 한데 모은 병뚜껑은 시민단체의 재활용 프로젝트인 ‘플라스틱 방앗간’으로 보내 업사이클을 했다. 작아서 재활용 선별과정에서 빠지기 일쑤인 플라스틱 병뚜껑을 모으기 위해 묘책을 낸 것이다. 영서양은 "1학년들이 주로 했던 활동인데 2학년 선배들이 더 열심히 참여해줬다"며 자랑했다.

힘을 주진 못할망정 냉소에 부딪혀

이들은 냉소에 자주 부딪힌다. 웬 호들갑이냐는 반응도 많다. 실천의 힘을 믿는 청소년들일지라도 이런 반응을 마주하면 힘이 빠진다.

영서양은 “화장품 가게에 환경 관련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너 그런다고 안 바뀌어’라며 단칼에 거절하셨던 게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당시 작전여고 학생들은 포장폐기물 관련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상적으로 쓰는 물건 중에서도 과대포장이 많은 화장품에 대해 알아보려 했던 건데 뜻밖의 벽에 부딪혔다.

어른들만 냉소하는 것은 아니다. 또래 청소년 중에도 기후위기에 무관심한 사람이 많다. 몇 년 후에 닥칠지 모르는 재앙보다는 당장의 즐거움이나 학업이 더 중요하다는 분위기다.

근혜양은 "친구들이 저희가 하는 환경캠페인을 보면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결국엔 ‘굳이 저런 활동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될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위기가 닥쳐도 나만 피해 안 입으면 된다’는 생각이죠"라고 말했다. 영서양도 “학업 압박이 심하고, 내 꿈이 무엇인지 모른 채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는 학생들이 많잖아요. 그런 친구들이 과연 환경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라고 덧붙였다.

단양중의 김주연(16)양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거죠”라고 꼬집었다. 어른들이 지금도 기후변화는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무관심하니 학생들도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연양은 “저희도 이렇게 직접 환경을 지킬 수 있다고 나서고 있잖아요. 어른들도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중학교 환경교과 채택, 단 7% 불과

이들은 학교에서 환경교육이 이뤄진다면 학생들의 관심은 금방 높아질 거라고 입을 모은다. 작전여고의 우다현(17)양은 “학교에서 환경 관련 수업을 종종 하는데 그때는 관심이 좀 올라가요. 그런데 한참 수업을 안 하면 흥미가 사라지죠. 결국 학생들이 기후위기 해결에 관심을 가지려면 이 문제에 대해 꾸준히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 2,377개 고등학교 중 환경교과를 선택과목으로 둔 경우는 24.1%(573개교)에 불과했다. 중학교는 3,261개교 중 224개교, 단 6.9%다. 환경교과가 있다고 해도 선택과목이라 전교생이 듣는 것도 아니다. 한국일보가 인터뷰한 5개 학교 중에도 환경 과목이 개설된 경우는 충렬여고 단 한 곳뿐이었다.

물론 학생들은 환경수업이 없어도 과학이나 기술ㆍ가정 등 다른 과목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내용을 배우고 있다. 외부 강사를 초빙해서 특별 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렇게 다뤄지는 내용은 ‘지역별 기후 특색’ 등 과학 상식에 국한돼 있다.

청소년들은 궁금한 게 많지만 답을 잘 얻지 못한다. 파주 문산수억고 환경동아리 해바라기의 이아림(19)양은 “제가 정말 궁금한 건 정부가 발표했다고 하는 탄소중립 시나리오거든요. 또 환경부에서 기업이나 가정의 탄소중립 실천 안내서도 발표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도 알고 싶고요. 하지만 학교에서 배운 건 신재생에너지에 무엇이 있나 정도예요”라며 아쉬워했다.

지금의 상황이 답답해서 직접 교육에 나서기도 한다. 충렬여고 CSI는 줄곧 통영의 초등학생들에게 환경 교육을 해왔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학교 방문이 어려웠지만 학생들은 후배들에게 가 닿을 방법을 찾았다. 엽서를 주고받으면서 환경에 대한 질문을 받고, 여기에 답을 해줬다.

단양중 세단도 주변 초등학생들을 찾아 환경의 중요성을 알렸다. 근혜양은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대나무 칫솔을 나눠주면서 ‘플라스틱은 100년이 넘어도 잘 안 썩는다’라고 알려줬거든요. 그때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걸 보고 정말 뿌듯함을 느꼈어요”라고 회상했다.

실망스러운 정치와 정책

지난해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국제사회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하고 석탄 및 화석연료 의존도를 축소하겠다는 합의를 채택했다. 기후위기 대응이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가 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 이번 대선에서도 기후위기와 관련한 공약은 거의 실종됐다. 작전여고 김려원(17)양은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모두 찾아봤는데 부동산이나 경제 발전 분야는 정책이 정말 많았지만 기후에 관한 정책은 잘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후위기가 삶을 위협하는 재앙으로 돌아온다면 이미 때는 늦다. 아림양은 그래서 당장 가능한 방법이라도 시작하길 바랐다. “현실적으로 탄소배출량을 감소시키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리잖아요. 인식 변화나 제도 개선이라든지 풀어가야 할 문제도 많죠. 이에 비하면 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나무의 수를 늘리는 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노력인데 관련 정책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무엇보다도 당장의 5년이 아닌 앞으로의 50년을 위한 약속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영서양은 "기후위기와 관련한 대선후보 토론회를 봤는데 탄소중립 방안으로 원자력발전 얘기만 해서 의아했어요. 원전이 그동안 우리나라에 도움을 주었던 건 사실이지만, 지속가능한 발전을 생각한다면 신재생에너지가 미래를 생각하는 에너지라는 점이 더 분명하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에서는 사람이 살아갈 거라는 거, 그게 바로 저희라는 점을 알아주면 좋겠어요."

신혜정 기자
이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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