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13일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나란히 앉은 자리에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문제를 거론하면서 의미심장한 분위기가 연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맥락상 공정위 기업진단 정책을 소개하는 형식이었지만, 최 회장이 SK실트론(옛 LG실트론) 지분을 인수해 SK㈜의 사업기회를 가로챈 혐의로 최근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8억 원 제재를 받은 직후인 시점이어서 주목된다.
조 위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정책강연회에 참석, 개정 공정거래법 관련 내용을 강연했다. 강연회에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을 비롯해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하범종 LG 사장, 조현일 한화 사장 등 주요 기업 대표, 공정위 관계자 등 16명이 참석했다.
조 위원장은 “시장을 하나의 정원으로 볼 때 공정위는 시장경제를 잘 가꾸는 정원사”라며 “공정위 정책은 시장경제 질서의 근본을 지키기 위한 게임의 룰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정위 정책에 대해 △경쟁정책 △기업집단 정책 △갑을 정책 △소비자 정책 등 4가지 분야로 나눠 설명하던 중 기업집단 정책 부분에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문제를 언급했다.
조 위원장은 “총수 일가의 사익추구와 부당한 영향력 행사에 대해 많은 걱정이 있다”며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만들고, 부당 내부거래를 제지하는 것이 공정위의 기업집단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원론적 얘기지만, 조 위원장과 나란히 앉아 있던 ‘최 회장을 겨눈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최 회장은 지난달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공정위 전원회의에 참석, SK실트론 사익편취 의혹 사건 관련 자신의 입장을 소명했다. 전원회의는 당사자 참석이 필수가 아니어서 대기업 총수가 직접 참석한 건 이례적이다. 최 회장의 적극 소명에도 공정위는 최 회장의 지분 인수를 위법행위로 결론 짓고, 최 회장과 SK㈜에 각각 8억 원씩, 총 16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재계 관계자는 “강연 맥락상 조 위원장이 일반적인 얘기를 하면서 최 회장을 질책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다만, 두 사람이 사익편취 혐의를 두고 만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분위기가 미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