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가 피하려 탈출 포기한 공군 조종사의 살신성인

입력
2022.01.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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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경기 화성 공군 F-5E 전투기 추락 사건으로 순직한 심정민 대위가 민가와 충돌을 피하려고 조종간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공군 조사에 따르면 심 대위는 이륙 후 엔진 화재 경고등이 켜지며 기체가 급강하하자 관제탑과의 교신에서 두 차례 비상탈출을 선언했다. 바로 탈출했더라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만 민가 쪽 추락 가능성 때문에 인근 야산으로 기수를 돌려 조종간을 잡고 있다 탈출 시기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사고기는 결국 마을과 100m 떨어진 야산에 충돌했다.

공군을 자랑스러워하며 "언제까지나 전투조종사로 살고 싶다"고 했다는 심 대위는 결혼 1년 차 청년이었다. 탈출을 선언한 뒤 조종석 앞 유리창 너머 민가를 보며 그 짧은 순간 얼마나 엄청난 고민이 밀려들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무조건 반사와도 같았던 그의 선택이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표상"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소령으로 추서돼 14일 치러지는 장례식에 맞춰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심 대위의 살신성인으로 새삼 국민의 심부름꾼인 공직자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 사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구호만 요란할 뿐 대통령부터 개인 비리로 법의 단죄를 받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끝도 없이 터지는 성 비리로 군의 명예 또한 추락일로다. 심 대위의 고귀한 희생을 이런 풍토를 바로잡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고인 추모와 별개로 사고 원인을 규명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고기는 이륙 직후 엔진 이상으로 급히 기지 선회 중 조종 계통의 결함이 추가로 발생했다고 한다. 정비 불량이나 기체 노후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공군은 이번 사고 기종과 F-4 등 운용 기한이 지난 전투기 100여 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전력 유지를 위해 수리해 가며 수명을 늘려 작전 수행 중이라고 한다. 2000년 이후 이 노후기 중 17대가 추락했고 숨진 조종사만 10명이 넘는다. 군 당국은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한 근본 대책을 내놔 심 대위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