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사태 전운 고조… ‘전쟁이냐 대화냐’ 칼자루 쥔 푸틴

입력
2022.01.1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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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나토 회담도 빈손으로 끝나
러, 국경 인근서 연일 무력시위
美, 우크라 2억弗 군사원조 승인
“유럽에서 새로운 무력 충돌이 발생할 실질적 위험이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사무총장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면 유럽 안보에 가장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알렉산드르 그루슈코 러시아 외무차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무력 충돌 위기를 막기 위해 1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토와 러시아가 마주 앉았지만, 예상대로 평행선만 달리다가 빈손으로 헤어졌다. 나토 동진(東進) 중단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반대 등 러시아가 요구한 안전 보장안을 나토는 단호히 거부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 긴장 완화를 촉구한 나토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양측 설전을 보면, 전운이 가시기는커녕 더욱 고조된 분위기다.

전쟁이냐, 대화냐. 우크라이나 사태는 기로에 서 있다. 웬디 셔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군비 축소 문제 등은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일말의 기대를 열어 뒀고,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도 추가 회담을 제안했지만, 러시아 대표단은 수락도 거부도 하지 않았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러시아 고위급 외교관들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는 또 다른 암시”라고 짚었다. 결국 칼자루를 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푸틴 대통령이라는 얘기다.

뚜렷한 결실은 없지만 러시아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나토와 직접 대면함으로써 구소련 국가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 끼치는 영향력을 서방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루슈코 외무차관도 “러시아가 미래 유럽 안보에 대해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나토에 상기시키는 기회였다”고 자평했다. 이번 만남이 난항을 겪을 거란 관측이 회담 전부터 제기됐는데도 러시아가 추가 협상 제안을 놓고 간 보기 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회담이 열리는 와중에 러시아의 무력 시위가 연일 계속됐다는 점도 이러한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인테르팍스통신에 따르면 이날도 러시아군은 병력 3,000명과 군사장비를 동원해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보로네슈, 벨고로드, 스몰렌스크 등 서부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했다. 회담을 마친 뒤 “군비 통제 조치에 대한 논의를 계속할 용의가 있다”던 러시아 대표단의 발언과는 배치되는 행보다.

일각에선 푸틴 대통령이 회담 결렬을 구실 삼아 본격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작전에 착수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안드리 자고로드니우크 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이날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대규모 침공을 단행할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그 대신 전력망을 비롯한 중요 인프라 파괴, 사이버 공격, 대규모 정보 작전 등이 포함된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러시아는 자신들이 의도한 대로 모멘텀을 만들어 냈고 사용하기를 원한다”며 “그들의 전략 목표는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미 행정부 관계자를 인용, “러시아의 탱크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는 대로 제재할 준비가 돼 있다”며 미국산 제품 수출 금지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 상원에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러시아군과 정부 인사뿐 아니라 푸틴 대통령까지 제재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아울러 CNN방송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앞서 일시 보류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2억 달러(약 2,400억 원) 규모 군사 원조를 지난달 말 긴밀히 승인했다”고 전했다.

13일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와 러시아가 회동했다. 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도 첫 등판했다. 그러나 회의 주체가 각국 대사들이라, 장ㆍ차관급 고위 외교관이 나섰던 이전 회담보다는 급이 낮다. 전쟁은 점점 눈앞에 다가오지만 이번에도 획기적인 돌파구가 마련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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