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형사법정의 풍경이 크게 바뀐다. 피고인이 검찰 수사 단계의 진술을 부인하면 검찰조서를 유죄 증거로 쓸 수 없다. 기존에는 특별한 하자가 없는 이상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했지만, 형사소송법(형소법) 개정에 따라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신문조서 내용을 인정할 때만 증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강압식 수사관행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함으로써 법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가리자는 게 입법 취지다.
법조계에서는 ‘조서 재판’의 시작이던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함으로써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강화한다는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재판 장기화나 부패범죄 등 진술 의존도가 높은 범죄의 처벌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다. 12일 홍기태 사법정책연구원 원장을 만나 형소법 개정에 따른 재판 절차의 변화와 우려되는 문제점 및 대책을 짚어봤다. 인터뷰에는 사법정책연구원 백광균(판사)ㆍ이상훈(법학박사) 연구위원이 배석, 외국 사례 등에 대한 연구결과를 부연 설명했다.
_형사소송법 개정 취지는 무엇인가.
“검찰 조서를 바탕으로 재판을 하게 되면 수사기관이 이미 다 작성해 놓은 조서의 프레임에 판사의 심증 형성이 갇히기 쉽다. 공판중심주의로 반대 신문이 가능하지만, 일단 조서에 의해 법관이 선입견을 가질 위험성이 크다. 구술심리를 강화하는 사법개혁 차원에서 검찰 조서 증거능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논의는 진작부터 있어왔다. 최근 검찰과 경찰이 동등한 수사 주체로 규정된 이상, 양측이 작성한 조서의 증거 능력을 달리 판단할 만한 이유도 없다.”
_이미 구술 심리를 강조하는 공판중심주의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검찰 조서가 재판에 영향을 미치나.
“검찰 조사는 대등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우선 검사가 무엇을 구체적으로 물어보는지 피의자로서는 의도를 알 도리가 없다. 답변만 요구받는 수동적 입장이 된다. 또 검찰 조사실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는 피의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못하는 경우도 많다. 유도 신문에 넘어가 부지불식 간에 불리한 진술도 하게 되는데 이게 모두 조서로 남아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_이전에도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찰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 조서를 인정할지 아니면 법정 진술을 인정할지 재판장이 결정하는 것 아닌가.
“물론 이전에도 피고인이 검찰 조서를 부인하고 달리 말하는 경우, 재판부가 사실 관계를 확정하기 위해 추가 신문 등을 진행했다. 법정에서 피고인이 말한 대로 새로운 자료가 나오고 검찰 조서와 다른 정황이 발견되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피의자가 검찰에서 자백한 뒤 불리하다 싶은 생각에 법정에서 거짓으로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기존 재판에서는 이처럼 피고인이 입장을 번복하는 경우 재판장은 ‘허위로 번복했다’고 판단, 검찰조서를 신뢰하는 쪽으로 결론 내릴 수도 있었다. 검찰도 조서를 잘 작성해두면 피고인이 법정에서 무슨 말을 하든 판사가 조서를 믿어준다는 확신에 빠지기 쉽다. 이런 악순환과 불균형을 깨자는 취지에서 형소법 개정이 추진됐다.”
_강압 수사 등 검찰의 수사관행으로 인해 검찰 조서가 오염되는 경우도 있나.
“예전에 비하면 강압수사 관행은 거의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억압적인 분위기는 부정할 수 없다. 소위 ‘사법 농단’ 사건 때 검찰 조사를 받은 판사들 가운데 ‘우리도 이런데 보통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라고 토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진술을 무리하게 이끌어낸다든가, 잦은 소환으로 피의자를 압박하는 등 무리한 수사 관행이 근절되었다고는 단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가 그대로 녹아 있는 조서를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이번 형소법 개정에 포함돼 있다고 본다.”
_기존에도 검찰 조서를 부인하는 경우가 많나.
“내용과 형식에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건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구체적 통계는 없지만 합의부가 처리하는 중한 사건에서 검찰 조서를 부인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일정 형량 이하의 단독 사건에서는 검찰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자백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_외국의 경우 검찰 조서를 법정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독일은 직접주의 원칙에 따라 조서 자체의 증거 사용을 금지하지만, 조사자 증언과 신문 과정에서 제시를 허용하고 있으며 제시된 조서의 내용은 판결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일본은 우리처럼 검찰조서를 작성하고 있지만 증거 사용은 점차적으로 줄여가는 추세다. 영국은 경찰 단계에서 조사 과정을 모두 녹화하고 있다. 미국 공판정에서는 조서가 아니라 경찰의 조사자 증언을 이용한다. 주로 대륙법계에서 조서를 작성하지만, 그 증거 사용은 공판중심주의 관점에서 제한하는 추세다.”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입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준비 태세에는 우려의 시선이 상당하다. 홍 원장은 “그동안 재판실무에서 검사 피신은 유죄 입증과 피고인 주장의 신빙성을 판단하기 위한 핵심 역할을 했다”면서 “검찰조서를 배제한 재판의 장기화는 물론 검찰조서 없이 재판을 진행하는 재판부가 제각각 해석을 내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_형소법 개정으로 검찰조서를 부인하는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하나.
“일률적으로 예상하기 쉽지 않다. 변호인이 재판에 유리하다고 판단한다면 조서를 부인하고 조서 없는 재판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에서 진술한 사실을 번복할 때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또 조서가 없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검찰 수사관 등 조사자가 직접 증인으로 나와 법정에서 생생한 사실을 전달한다면 도리어 유무죄 판단이나 양형에 불리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변호사나 피고인 입장에서 검찰조서를 부인할지는 사건마다 다 다를 수 있다.”
_이제는 검찰이 피의자신문조서를 법정에 제출하지 않아도 되나.
“유죄 입증을 목표로 하는 검찰이 법정에 조서를 제출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으로 본다. 다만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하면 유죄입증 증거로 쓸 수는 없다. 검찰이 목적에 부합하도록 기존의 문답식 조서와 다르게 형태를 바꿔보려는 시도를 할 여지도 있다.”
_검찰조서가 배제되면 재판 절차는 어떻게 달라지나.
“이전에는 검찰조서를 토대로 피고인 서면 진술이나 제3자 진술, 필요하면 피고인ㆍ증인 신문 등의 절차를 거쳐 유무죄를 판단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피고인이 검찰 조서를 부인하면 유죄 증거로 쓸 수 없게 된다. 다만 피고인의 거짓 진술을 무력화하는 간접 증거로는 활용할 수 있다. 가령 검찰이 ‘수사기관 진술과 달리 법정에서 번복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서 피고인의 법정진술을 탄핵하는 용도로는 활용이 가능하다. 조사받을 때와 태도가 달라졌다면 검사가 수사관을 증인으로 내세워 피고인의 종전 진술을 재연하는 장면도 연출될 수 있다. 여기에 변호사가 다시 반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말 그대로 공판중심주의가 뿌리를 내리게 된다.”
_공판중심주의는 활기를 띠겠지만 재판이 무한정 길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피고인이 조서를 부인하는 사건에서는 재판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문서 형식의 조서가 재판 절차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말로써 공방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재판의 장기화가 불가피하다. 반대로 피고인에게는 선택할 권리가 하나 더 생기면서 피고인은 상당히 유리해진다. 무죄가 지금보다 많아지거나 엄격한 증거 요구로 기소가 이전보다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서 없는 재판을 진행하는 재판부마다 유무죄의 판단 기준이 약간씩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불합리한 검찰 조사 관행으로 억울한 피의자ㆍ피고인이 없도록 하겠다는 입법 의지를 법원 입장에서는 수용할 수밖에 없다.”
_피고인이 부인하는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법정에서 2차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진술녹화 증거능력을 폐기한 헌재 결정에 따른 우려는 형소법 개정과는 결이 다른 문제다. 다만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하는 경우 검사나 수사관 등 조사자가 법정에서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거론하면서 피해자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비공개 신문하는 방향 등의 보완책이 필요해 보인다.”
_재판 장기화에 따라 법관 부족 사태의 가중화도 우려된다.
“형소법 개정이 아니라도 법관 증원은 법원의 최대 과제다.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하게 되면 형사재판부는 더욱 업무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대법원에서도 법관 증원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형소법 개정에 따라 법원과 검찰에 비상이 걸렸다. 법원에서는 법관 증원 및 간이공판 확대 등 장단기 대책을 고민하고, 검찰에서는 검찰 수사관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조사자 증언 및 영상 녹화자료 활용 등의 대책을 지시했다. 홍 원장은 “재판 장기화에 대비해 충실한 심리가 가능하도록 일률적으로 피고인 구속기간을 6개월(1심)로 제한한 제도를 재검토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_법원에서는 단순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는 절차를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
“공판중심주의 자체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판중심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도 보다 중요한 사건은 충분히 심리하고, 단순한 사건은 간략하게 처리하는 선택과 집중의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 증거 조사를 보다 간소화하는 간이 공판 절차를 확대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만하다. 자백하면서 법정형이 일정 수준 이하인 사건은 이의가 없을 경우 서류 심사로 절차를 끝내는 방안도 대안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
_검찰에서는 형소법 개정에 대비해 조사 과정에서 녹화한 영상자료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영상 녹화물은 일단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게 돼 있다. 녹화 자료를 증거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검증과 연구가 더 필요하다. 녹화 영상으로 물리력 행사 등 강압수사가 없었다는 점은 입증할 수 있겠지만, 검찰의 일방적 조사 내용이라는 점에서는 조서와 다를 바 없다. 영국의 경우 수사 과정을 전부 영상으로 녹화하는데, 법정에서는 변호인과 검사가 사전 협의를 거쳐 필요한 부분만 녹취서를 작성, 활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영상 녹화물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고 있지만, 증거 채택은 상당히 엄격히 하고 있다. 이처럼 녹화 영상자료를 제한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수사기관의 관리ㆍ감독 아래 진행되는 장시간 조사의 신뢰성 문제 때문이다.”
_일부에서는 재판 장기화의 대안으로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과 사법방해죄 도입을 제기하고 있다.
“수사 제도 개선 차원에서 형소법 개정이 추진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행하는 방안들이다. 플리바게닝이나 사법방해죄의 도입은 검찰 등 수사기관에 더 큰 칼을 쥐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고려해 볼 제도적 장치일지 몰라도 수사기관과 피의자ㆍ피고인이 대등한 입장이 되고 공판중심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에 고민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