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 사태, 난처한 중국

입력
2022.01.12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는 유라시아의 발칸으로 불린다. 인종의 가마솥일 만큼 인종, 민족 간 문제도 복잡하다. 카자흐만 해도 슬라브인과 카자흐인으로 양분된 언어적 민족적 갈등이 크다. 지난 2일 시작된 카자흐 반정부 시위는 160여 명의 희생자를 내고 진압 국면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정학적 문제가 꿈틀대면서 상황은 복잡해지고 있다. 카자흐의 역동성이 커진다면 중앙아시아 전체를 흔들 강대국 간 게임이 시작될 수 있다.

□ 카자흐 사태는 부패하고 독재적인 권력, 경제 불평등에 대한 내부 저항으로 평가된다. 카자흐는 과거 이웃국가에 돈을 벌러 가던 빈국에서 중앙아시아의 부국으로 변모했다. 우라늄은 전 세계에 40%를 공급하고, 원유 매장량은 세계 12위, 금 은 구리 아연은 세계 10위권이다. 하지만 부의 절반은 162명의 신흥재벌이 차지하고, 최저임금은 월 100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불평등이 커져 있다. 이런 불만이 에너지 가격 폭등에 대한 이번 항의를 전국 규모의 반정부 시위로 확산시킨 불쏘시개였다.

□ 상황이 복잡 미묘해진 것은 토카예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군사 도움을 요청하면서다. 카자흐는 벨라루스와 함께 러시아의 최대 우방이긴 하다. 그럼에도 카자흐가 미국과 중국이 아닌 러시아를 선택한 것은 푸틴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겨준 셈이다. 러시아는 파견된 공수부대의 철수를 미적대면서 이참에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확대까지 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오히려 카자흐인의 반발과 분리세력을 자극해 중국까지 딜레마에 빠져들게 할 수 있다.

□ 카자흐 정부는 이번 사태를 국내외 극단주의 세력에 의한 테러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전투경험을 가진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원들이 가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분리 세력이 대륙횡단철도 일부 지대만 차단해도 러시아의 시베리아 지배력은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중국의 부상에 공포감을 갖는 현지 세력을 누군가 이용한다면 신장 위구르는 혼란에 처하게 된다. 곤란한 중국 입장은 왕이 외교부장이 내정불간섭 원칙까지 깨트리고, 카자흐에 군사적 지원 의사를 밝힌 데서 짐작할 수 있다.

이태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