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가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한 기싸움을 이어가면서 12일(현지시간) 예정된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협상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간 양국 회담에 이어 이번 회담에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면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프랑스, 독일 간 4자 정상회담을 제안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나토와의 회담을 앞둔 이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불허라는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미국과의 안보회담을 중단할 수 있다”며 “이와 관련 현재까지 낙관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회담을 계속할지 여부는 앞으로 며칠간의 협상 결과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나토 회담에 이어 13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와도 회담이 예정돼 있다.
미국도 '나토 개방 정책'을 강조하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줄리앤 스미스 나토 주재 미국 대사는 이날 온라인 브리핑에서 “어떤 동맹국도 나토 개방 정책을 바꾸거나 협상할 의지는 없다”며 “이번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금지가) 논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러시아와의 협상 실패 가능성에 대해 “가설에 관해 말할 순 없다”면서 “우리 중 누구도 특별히 낙관적이거나 혹은 비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결국 나토 회담도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이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서방을 자극한 점도 양측의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하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미국과 나토는 생산적인 회담이 되기 위해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접경 지대에 배치한 대규모 병력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이날 보로네슈, 벨고로트, 브랸스크, 스몰렌스크 등 우크라이나 인근 지역에 병력 3,000명과 장갑차 등 군사 장비 300여 대를 투입하면서 보란 듯이 힘을 과시했다.
카드리 릭 유럽외교위원회 수석정책연구원은 “미국과 러시아의 접근법은 양립 불가능하다”며 “미군은 기술적 군비 통제 문제로 회담을 축소하려는 반면 러시아는 유럽 전체 안보 질서를 재정립하길 원한다”고 지적했다.
미러 갈등 속에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이날 러시아, 독일, 프랑스와의 별도의 4자 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이들 4개국 정상들은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방의 내전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비정기적 회담인 ‘노르망디 포맷(형식)’을 해왔다. 독일과 프랑스는 적극 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나섰으며, 러시아 측에 회담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독일, 프랑스는 노르망디 포맷 회담이 재개되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러시아 측이 이 노력을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며 “이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 과정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