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가 노동시장의 주력으로 떠오르면서 노사관계도 상상치 못했던 변화 압력을 받고 있다. 능력주의에 따른 공정성을 세대가치로 공유하고 있는 MZ들은 채용부터 성과 분배까지 모든 부문에서, 연대와 평등주의를 앞세운 기성세대와 정면충돌 중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서 불거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란, 성과급 공정 분배를 주장하는 MZ세대 중심의 사무직 노조의 등장 등이 그 사례다.
이 같은 MZ세대의 등장으로 산업화 이후 수십년간 이어져온 기업의 임금ㆍ인사체계 및 조직문화의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뿐만 아니라 40~50대 생산직 중심의 노조 역시 상당한 쇄신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
한국일보가 3월 대선을 앞두고 한국사회의 핵심 현안에 대한 정책적 해법 모색을 위해 기획한 ’대한민국 지속 가능 솔루션’ 프로젝트 노동분과 3차 회의에서 전문가들은 MZ세대와 기성세대 간 '공정성' 갈등의 근본 원인을 '좋은 일자리 부족'으로 진단하면서,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의 공정 요구를 유연하게 수용할 것을 제안했다. 구체적 방안으로 △청년 생애 첫 직장은 정규직 보장 △직무와 성과 등에 기반한 임금체계 전환 △입학연령 하향 조정을 통한 조기취업 유도 등을 제안했다.
노동분과 3차 회의에는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분과위원장),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욱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 이왕구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참석했다.
권순원 교수= 청년 표심을 잡기 위한 주요 대선 후보 진영의 노력이 경쟁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안정적 노동시장에 진입한 청년들에게는 공정성과 능력주의가 관심사고, 노동시장 밖의 청년들은 안정된 노동시장 진입이 이슈다. 2020년 '인국공 사태'는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기이한 사태였다. ‘공정성 내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유리 천장' 문제가 여전하고, 채용 시 소수자를 우대하는 적극적 고용 개선 조치가 존재하는 현실은 MZ세대가 주장하는 공정성과 능력주의만으로 노동시장의 불합리와 불공정의 해결이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능력주의에 기반한 공정성과 시장의 구조적 불평등 이슈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박귀천 교수= 우선 남녀 격차 문제를 말하자면 노동시장 진입 단계에서 남녀 격차는 개선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20대 후반 여성 취업률은 남성과 같거나 오히려 높다. 그러나 여성관리자는 여전히 적다. 2018년 젊은 여성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멘토로 삼을 만한 여성 상사는 결혼을 안 한 상사밖에 없다”는 응답이 나온 것을 보았다. 결국 어떻게 일ㆍ가정 양립을 가능하도록 하느냐가 공정성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기업문화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회식자리에서의 친분, 자발적 야근 분위기 같은 정성적 평가 요인 때문에 여성들이 승진에서 밀린다. 근로자 개인이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 확대 등 개인시간에 높은 가치를 두는 MZ세대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제도와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
권순원 교수= 대기업에 가 보면 여성 직원들의 혼인율과 출산율은 모두 높다. 반면 불안정 고용 계층은 혼인·출산율이 모두 낮다. 일종의 악순환이다. 남녀 간 일자리 및 경력 유지의 구조적 차별을 없애는 핵심은 출산ㆍ육아 후에도 경력 관리나 승진상 손해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욱래 변호사 = ‘유리 천장’과 관련해 좀 과감한 주장일 수 있으나 시각을 바꾸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무조건 회사에서는 이사로 승진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패배자로 보는 인식은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일만 열심히 한다면 승진하지 않고 대리, 과장으로 사는 것은 어떤가. 특정한 경로만을 성공으로 간주하고 몰아가는 게 옳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MZ세대가 제기하는 워라밸 문제를 고민할 때는 전체적으로 바람직한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그려볼 필요가 있다.
권순원 교수 = MZ세대가 제기하는 공정성 문제를 짚어보자. 이슈를 촉발한 대표적 사건이 서울교통공사와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였다.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야 할까?
정흥준 교수 =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할 때 여론은 70%가 찬성이었다. 그런데 그 중간에 MZ세대가 ‘공정’ 문제를 제기했다. 과거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이 정의롭고 공정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대세였는데 MZ세대는 성과와 능력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받는 걸 공정하다고 주장해 당황했다. 문제의 원인은 기회의 부족이다. 기회 부족 때문에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기준으로 MZ세대는 능력과 성과를 들고 나온 것이다.
권순원 교수= 현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방법론적으로 보완할 점은 없을까.
정흥준 교수= 능력과 성과를 기준으로 하자는 주장이 이해 가면서도 지나치게 능력과 성과에 모든 걸 부여하면 약육강식이 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수정해서 추진돼야 한다. 일자리 부족 상태에서는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자는 주장이 잘 수용되기 어렵다. 무조건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보다는 전환 기준을 다시 명확히 세울 필요가 있다 . 지금까지 정책은 상시 지속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완료하는 것이었다. 70~80%가 내부 인력이었다. 사람을 전환해야 하는지, 일자리를 전환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앞으로는 ‘해당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특히 청년 친화적인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환할 때는 외부에 더 많은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권순원 교수= 소위 MZ세대 노조가 주장하는 공정성은 능력주의 인사 원칙과 성과 보상에 대한 요구가 핵심이다. 사무직 노조를 중심으로 연공형 인사체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성과의 균등한 배분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은 특정시기에 대규모 신입사원을 채용해 연공형 내부노동시장 시스템에 편입하고 기업특수적 숙련의 형성을 통해 승진과 정년을 보장한다. 한번 진입하면 내부시장 시스템과 제도적 안전판을 통해 경력과 소득이 보장되는 폐쇄적 구조다. 그러다 보니 첫 직장이 중요하다. 대기업·공공기관에 진입하기 위해 졸업을 미루고 대학에 남아 취업을 준비하는 N수 세대가 점점 많아진다. 하지만 최근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5년간 채용한 연봉 3,000만 원 이상 신입사원은 약 28만 명 수준이다. 300만 명이 넘는 구직자의 9%만이 대기업 진입에 성공한 셈이다. 이런 구조는 지속하기 어렵다. 특정 시점에 무경력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관행, 내부시장에 의존하는 연공형 임금·인사시스템, 제도화된 60세 정년 등에 대한 개방적 혁신이 필요하다. 직무, 성과 등에 기반한 임금체계로의 전환, 외부노동시장의 개발과 확장, 노동력의 기업 간 이동 활성화 등을 체계적으로 준비할 때다.
박귀천 교수 = 청년세대들의 행동을 이기적이라고 비판하지만 사실 이들은 기성 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구조를 열심히 따라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한 입시경쟁이 너무 치열해 모든 노력과 비용을 투자해 입학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마인드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자신의 노력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같은 방식이 발생하니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 상황에선 나이 든 사람들이 기득권을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일해서 노인들을 먹여살리는 구조가 복지사회의 기본적 시스템 아닌가. 한정된 양질의 일자리를 나눌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고령자들의 일자리는 보다 유연하게 운영하고 안정된 일자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보다 많이 넘겨야 한다.
정흥준 교수= 일단 직무급제를 추진할 여건이 되는 것 같다. 사실 MZ세대도 연공급 좋아한다. 다만 그게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일의 가치에 걸맞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해 가는 게 근본 해법이라고 본다. 세대 간 일자리 갈등과 관련해 두 가지를 제안한다. 우선 청년인력을 채용하면 2년 근속 시 정부가 600만 원을 지원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 제도를 확대하자.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청년들에게 자산 형성의 기회를 줄 수 있어 호평을 받고 있다. 또 하나 파격적 대책으로 청년들에게 첫 직장은 정규직 채용을 보장하는 것이다. 청년세대가 앞으로 20년간 노동시장의 주축이 될 것이므로 누가 봐도 ‘이건 혜택이다’라고 할 정도의 혜택을 청년들에게 주는 게 좋다.
이욱래 변호사= 첫 직장을 정규직으로 취업할 권리를 부여하자는 건 좋은 아이디어다. 문제는 사용자에게 계약 해지, 해고의 권한을 줄 필요가 있다. 공정한 평가가 이뤄져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바깥에 있는 산업예비군에게 기회를 주자. 박근혜 정부 때 ‘쉬운 해고’라고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전체의 1%든, 2%든 저성과자 퇴출 관련해서는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었으면 한다. 사용자들에게도 운신의 폭을 주자.
권순원 교수= 신입사원 채용, 내부시장에 기반한 인사관리와 고용보호, 그리고 연공형 임금체계는 고도성장기 기업 인적자원관리의 삼두마차였다. 이 구조를 깨뜨릴 수 있는 게 이욱래 변호사 말대로 업무성과부진자(소위 저성과자) 해고인데 우리 현실에서 쉽지 않다. 예컨대 10년을 일하다가 해고돼서 나가면 갈 수 있는 데가 없다. 개인능력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의 문제다. 노동시장을 혁신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채용부터 바꿔야 한다. 정기채용이든 수시채용이든 경력직 구직자가 기업에 진입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조직 및 직무와의 불화와 불일치로 회사를 나와도 경력에 기반해 전직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임금체계 또한 자연스럽게 직무형ㆍ성과형으로 전환될 것이다.
정흥준 교수= 디지털 전환과 탈탄소를 주의하면서 보고 있다. 기존 일자리가 줄어들기도 하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일자리 정책이 더 획기적이었으면 좋겠다. 미스매칭을 줄여야 하는데 우선 산업전환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수준의 사회적 대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 안에서 탄소세와 같은 비용 부담 논의를 해야 한다. 두 번째로 일자리 공단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현재 고용센터처럼 소극적인 실업급여를 주는 게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소개하고 제공하는 적극적 일자리 정책이 필요하다.
권순원 교수= 우리는 30년 공부하고 30년 일하고 30년 연금 받는 주기이다. 학령을 좀 낮춰서 6세쯤 입학하게 하는 방식은 어떨까. 20대 초반에 일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문과에서 교수는 40세나 돼야 할 수 있고 일반 직장인들도 30세 가까이에 취업한다. 학령을 낮춰 20대 초반부터 일을 시작하면 커리어에서 실수가 있더라도 이를 교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갈 수 있다. 정년제도를 유지해야 할까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욱래 변호사 = 정년이 의미가 있는 곳은 대기업, 공공기관 근로자 등 비교적 기득권을 가진 계층에 국한된다. 임금지불능력이 떨어져 구인난이 심각한 중소기업에서는 이미 정년이 의미가 없다. 중소기업은 연공급이 작동하지 않아 경력이 있으면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고령층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물론 정년이 없다는 걸 이용해 사용주가 횡포를 부리면 당연히 범죄로 처벌해야 한다.
박귀천 교수= 정년제도 자체를 없애면 대기업에서는 명예퇴직 프로그램을 지금보다 더 남용할 수도 있고 중소기업에서는 사업주가 근로자 해고를 자의적으로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년제도를 없애거나 유연하게 하더라도 기업 규모나 상황 등의 여건을 보고 신중히 생각할 문제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의 정년 연장은 반대한다. 정년 연장보다는 촉탁직 확대 등을 통해 정년이 지난 분들을 고용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정흥준 교수=정년 연장이 아닌 계속고용 개념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정년 이후 적정임금을 보장받으면서 기간에 관계없이 더 일하는 개념이다.
권순원 교수=연공형 임금체계에서 정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면서 오히려 근로자들의 장기고용에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했다. 당초 목표로 했던 고용 안정이 아닌 고용 불안을 초래했다. 다만 현재 60세 정년은 없앨 수 없다 하더라도 연장은 노사가 필요에 따라 정하도록 하자.
이왕구 논설위원 정혜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