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기 위한 국제협상이 시작됐지만 극적 타결은 없었다. 미국과 러시아 외교 대표단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우크라이나 접경 지대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은 당분간 고조될 전망이다.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이 이끄는 양국 대표단은 10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8시간 동안 미러안보회담을 이어갔다. 지난해 말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에 10만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올해 초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마련된 협상 자리였다. 하지만 이렇다 할 합의 없이 회담은 끝났다.
회담에선 미국ㆍ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등 서방과 러시아 간 안전 보장 문서 채택이 집중 논의됐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배치한 10만 명 가량의 병력을 먼저 철수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셔먼 부장관은 회담 후 브리핑에서 “긴장 완화 없이는 건설적이고 생산적이며 성공적인 외교를 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러시아에) 아주 분명히 했다”라고 밝혔다.
9일 열린 사전 협의에서도 셔먼 부장관은 △주권과 영토 온전성에 관한 국제 원칙, △주권국가가 동맹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에 관한 미국의 약속을 강조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 미국의 강력한 대응을 시사하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셔먼 부장관은 이날도 “미국에 그야말로 가능성이 없는 (러시아의) 안보 상 요구를 확고하게 반대했다”며 “우리는 누구도 나토의 개방정책을 닫아버리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미국은 대북제재 수준의 고강도 수출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을 통해 공개됐다. 외신들은 제재가 현실화 할 경우 러시아 소비자, 산업, 고용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가 쿠바, 이란, 북한, 시리아와 함께 수출을 가장 엄격하게 통제하는 국가에 추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러시아 금융기관 국제 거래 차단 △방위산업 및 러시아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미국 제품 또는 미국 설계 기술 금수 조치 부과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점령에 대항하는 게릴라전 무장세력 무장 지원 등을 검토하고 있다. 휴대폰과 자동차 등 러시아에 수출되는 많은 제품이 금수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미국은 지상훈련과 미사일 및 전략폭격기 배치 문제 등의 경우 러시아의 상호 조처에 따라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셔먼 부장관은 “양국 안보 이익에 맞고 전략적 안정성을 증진할 수 있는 상호 조처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라고 밝혔다.
반면 러시아는 이번 회담에서 나토의 동진(東進) 중단,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불허, 러시아 인접국 나토 무기 배치 금지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지난달 15일 미러 안전보장 조약안과 나토 회원국과의 안전 확보 조치에 관한 협정안 등 문서 2개 초안을 미국에 전달한 상태다.
랴브코프 차관은 회담 후 브리핑에서 “우리는 미국 동료들에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어떠한 계획이나 의도도 없으며 (침공은) 있을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라고 밝혔다. 또 “나토의 비확산 문제 진전과 러시아 접경 미사일 배치 금지 없이는 다른 측면에 대한 미국과의 작업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동시에 협상 실패 시 러시아의 대응이 군사ㆍ기술적 성격을 띨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접경 지대에서 훈련을 계속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미국ㆍ나토와 타협점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준비한 대로 우크라이나에 군사 압박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추가 대화의 여지는 남겼다. 셔먼 부장관은 11일 벨기에 브뤼셀로 이동해 나토에 이날 회담 내용을 브리핑할 예정이다. 이어 12일, 13일에는 각각 나토,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러시아와 마주 앉는다. 추가 협의를 통해 타협 지점을 모색하는 자리다. 셔먼 부장관은 “미국과 러시아는 핵전쟁은 결코 승리할 수 없으며 일어나서도 안 된다는 점에 동의했다”라며 “군축협정 같은 복잡한 문제에 관한 협상은 며칠 또는 몇 주 내에 마무리 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