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 운동까지 번지자 '멸공' 논란 발 빼는 정용진... "정치 운운 말라"

입력
2022.01.10 21:41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장문의 항변 글 올려
멸공 논란 정치 쟁점화에 선 그으며 '자중' 의사도
주가 폭락, 불매 운동까지 번진 '오너리스크' 단면

대선판으로까지 확산된 이른바 '멸공(滅共)' 논란을 쏘아 올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10일 오후 장문의 항변 글을 올리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 사업가로서 북한 리스크라는 현실을 마주하며 '멸공'을 언급한 것뿐이라는 해명과 함께, 앞으로 논란이 되는 발언을 자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멸공 발언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대립이 이어지는 와중에 신세계 주가가 폭락하고, 불매운동까지 번지며 '오너 리스크'가 현실화하자,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은 이번 게시글에 '#멸공' 해시태그를 달지 않았다.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이 올라온 건 이날 오후 5시쯤이다. 자신의 이름이 박힌 명함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정 부회장은 먼저 멸공 발언의 정치 쟁점화에 선을 그었다. "멸공은 누구한테는 정치지만 나한테는 현실"이라면서다.

'멸공' 논란 촉발한 정용진,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항변 글 올려

그는 "사업하면서 북한 때문에 외국에서 돈 빌릴 때 이자도 더 줘야 하고 미사일 쏘면 투자도 다 빠져나가는 일을 당해봤냐"고 반문하면서 "직접 위협을 당하고 손해를 보는 당사자로서 당연한 말을 하는데 더 이상 어떤 자격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왜 코리아 디스카운팅을 당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나한테 머라(뭐라)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업가는 사업을 하고, 정치인은 정치를 하면 된다"면서 "나는 사업가로서, 그리고 내가 사는 나라에 언제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르는 불안한 매일을 맞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느끼는 당연한 마음을 얘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계 진출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온 데 대해선 "사업하는 집에 태어나 사업가로 살다 죽을 것"이라면서 "진로 고민 없으니까 정치 운운 마시라"며 선을 그었다.

정치 쟁점화에 선 그으며 논란 발언 자제하겠다는 뜻 밝혀

멸공 발언은, 정 부회장의 군 복무 면제 비판으로도 불똥이 튀었다. 이에 대해 그는 "군대 안 갔다 오고 6·25 안 겪었으면 '주동이'(입을 속되게 이르는 주둥이의 오기) 놀리지 말라는데 그럼 '요리사 자격증 없으면 닥치고 드세요' 이런 뜻이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군복무 면제를 둘러싸고 자신의 과거 키와 몸무게가 공개된 것에 대해서 "군대 다녀오면, 남의 키 몸무게 함부러(함부로) 막 공개해도 되나? 그것도 사실과 다르게?"라며 강한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앞서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TBS 라디오에 나와 "기자 시절 삼성가 병역 면제에 대해 취재를 했다"며 "정 부회장이 군 면제를 받기 위해 체중을 불린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 회장의 대학 입학 당시 몸무게와 군 입대를 위해 신체검사 당시 몸무게를 구체적으로 언급, 25kg이나 증량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멸공 발언에 대한 항변으로 채워진 글 말미에 정 부회장은 앞으로 논란이 되는 발언을 자제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내 일상의 언어가 정치로 이용될 수 있는 것까지 계산하는 감, 내 갓끈을 어디서 매야 하는지 눈치 빠르게 알아야 하는 센스가 사업가의 자질이라면… 함양할 것"이라고 했다.

신세계 주가 폭락에 스타벅스, 이마트 등 불매운동 번지자 진화

실제로 정 부회장은 이날도 인스타그램에 음식 사진과 사촌동생이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게시글 등을 올렸지만, '#멸공' 해시태그가 올라온 글은 없었다. 대신 '코로나 박멸'이라는 의미로 '#멸코'라는 해시태그를 썼다.

정 부회장은 지난 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이 들어간 신문 기사 캡처 화면을 '#멸공' 해시태그와 함께 올렸다가 논란이 커지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으로 교체하면서 자신의 멸공은 중국이 아닌 '우리 위에 사는 애들'(북한)을 겨냥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논란에 기름을 부은 건 정치권이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이마트 매장을 찾아 멸치와 콩을 구입하는 사진을 올리면서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멸공 챌린지'가 확산됐고, 여권에서 '구시대적 색깔론'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오너의 '멸공' 발언 파장은 신세계 그룹 전체로 퍼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스타벅스 등 신세계 계열사 불매운동을 주장하는 글들이 올라왔고, 주가도 휘청였다. 한국거래소에서 신세계 주가는 전일 종가(25만 원) 대비 1만7,000원(-6.8%) 하락한 23만3,000원에 거래를 마감하며 직격탄을 맞았다.


강윤주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