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는 미국이 급기야 확진 의료진까지 진료 현장에 투입하는 고육지책을 꺼내 들었다. 대규모 확산으로 의료진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서 던진 카드인데, 되레 위기가 더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된다.
미국 폭스뉴스는 9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공공보건부가 전날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증상이 없는 의료인이 병원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새 지침을 내렸다고 전했다. 보건부는 지침에서 “병원 및 응급서비스 제공자가 전례 없는 코로나19 확진자 급증과 인력 부족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일시적인 유연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부는 의료 종사자는 격리 및 음성 확인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무증상인 경우에는 즉시 업무에 복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코로나19에 걸린 의료인은 가능한 한 다른 확진자 진료에만 투입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 지침의 배경은 의료진 부족이다.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몇몇 주는 의료 인력을 대상으로 백신 의무화 정책을 펼쳤다. 실제 백신을 맞지 않은 의료진은 무급 휴직에 들어가거나 해고됐다. 미 전역에 30여 개의 종합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카이저퍼머넌트(KP)는 지난해 10월 2,000명을 휴직 처리했고, 이달 말까지 백신 접종을 완료하지 못한다면 해고할 것을 예고했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환자의 절대적 수가 늘어난 것도 의료진 부족의 원인이 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고육지책으로 보고 있다. 실제 미국에서도 선례가 있다. 동부 로드아일랜드주는 지난달 31일 “의료진 인력 부족 위기 상황에서 확진됐지만 무증상인 의료진이 현업에 투입될 수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 조지 러더포드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UCSF) 전염병학 교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 남아공 정부가 이런 선택을 한 적이 있다”고 피치 못할 상황임을 강조했다. 프랑스도 최근 의료진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도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무증상일 때 근무할 수 있도록 격리를 면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비난이 잇따르는 모습이다. 샌디 레딩 캘리포니아간호사협회(CNA) 회장은 “(무증상이라고 할지라도) 코로나19에 확진된 의료진이 병원 내부에 바이러스를 퍼트릴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환자 급증에 대비하는 계획이라면 감염을 차단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밥 슈노버 전미서비스노동조합(SEIU) 캘리포니아지회장은 CBS뉴스에 “의료 종사자는 물론 환자는 과학에 근거한 명확한 규칙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며 “감염 가능성이 있는 근로자를 투입하는 것은 이번 팬데믹 기간에서 최악의 아이디어 중 하나”라고 힐난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일주일간 하루 평균 신규 확진자 수가 70만5,620명으로 전주보다 78% 증가했다고 이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