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컨트리 전설 이채원의 마지막 도전 "갈 데까지 가보겠다"

입력
2022.01.1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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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끝으로 은퇴했지만 
베이징올림픽 앞두고 다시 도전
6회 연속 올림픽 출전 대기록
식지 않은 열정 본 남편 지지에 용기
"크로스컨트리는 자신과의 싸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도전하고 싶다"

"은퇴 선언은 했지만 솔직히 평창올림픽 때 정말 많이 아쉬웠거든요.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결과도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고요. '한 번 더 도전해 보는 게 어떻냐'고 남편이나 주변에서 많이 말을 해 주니 욕심이 생겼어요."

한국 크로스컨트리의 전설 이채원(41·평창군청)이 자신의 여섯 번째 올림픽에 출전한다. 올림픽 6회 출전은 이규혁(빙상) 최서우 최흥철 김현기(이상 스키) 4명만 달성한 한국 역대 동·하계 올림픽 최다 출전 기록이다.

이채원은 이미 한국 크로스컨트리에선 모든 것을 이룬 국내 최강자다. 전국 동계체육대회에서 1996년부터 금메달만 78개를 수집했다. 2011년에는 한국 크로스컨트리 사상 동계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을 거머쥐었고, 2017년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선 한국 선수 최고 성적인 12위를 기록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을 땐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은퇴 선언을 한 뒤에도 스키에 대한 이채원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소속팀에서 스키를 계속 탔다. 그는 "아름다운 설원에서 맑은 공기를 맞으면서 스키를 탈 수 있다는 게 이 운동의 매력"이라며 "크로스컨트리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힘든 과정을 이기고 골인하면 성취감이 많이 느껴진다. 짜릿하다"고 말했다. 스무 살 이상 어린 선수들과의 경쟁에서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이채원을 보면서 남편이 먼저 "한 번만 더 도전해 보자"고 말을 꺼냈다. 올림픽이 가까워지면서 소속팀 코치와 감독도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부추겼다. 이채원은 4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말 평창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자꾸 용기를 주니까 욕심이 생겼다"고 복귀 배경을 밝혔다.



결국 이채원은 지난해 12월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스무 살 가까이 어린 선수들과 경쟁해 당당히 1위를 차지, 다시 한 번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뤘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이후 6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다. 엄마와 떨어지는 게 싫은 딸 은서만은 끝까지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한 번 더 도전해보고 싶다"는 엄마의 결심에 딸도 "그럼 다치지 말고 와야 한다"며 응원해줬다.

그는 현재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이 있는 평창에 머물면서 막바지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다. 이채원은 "정말 20대 때랑, 30대 때랑, 40대 때랑 체력적으로 차이가 많이 난다. 정말 가끔은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스키가 나의 직업이고 해야 할 일"이라며 "이번이 정말 마지막 올림픽이다. 갈 데까지 가보겠다"고 자신을 다잡았다.

크로스컨트리는 스키를 타고 설원을 쉼 없이 달려 완주하는 '눈위의 마라톤'이다. 154㎝의 작은 체구인 이채원은 북유럽 선수들에 비해 신체적으로도 불리하다. 이번 올림픽에서 그의 목표는 30위권에 진입하는 것이다. 한국 크로스컨트리의 역대 최고 성적은 이채원이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세운 33위다. 이채원은 "현실적으로 꼴찌를 하지 않는 것으로 잡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은 기간 열심히 준비해서 다시 한 번 30위권에 진입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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