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자들의 감옥, 외국인보호소]<상>그곳엔 누가 있나
본국의 종교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난민 신청자에게, 법무부가 난민 자격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렇다면 난민신청을 받아 줄 제3국으로라도 보내 달라"는 신청자의 호소를 무시하고 1년 가까이 구금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본국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그를 막무가내로 본국으로만 보내려고 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자 기한을 정하지 않고 무한정 가둬 놓은 것이다.
한국의 난민인정률(2010~2020년, 결정 건수 대비 인정 비율)은 1.3%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서, 제3국으로 보낼 경우 충분히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신청자들이 많다. 주요 20개국(G20) 중 10위의 난민인정률을 보이는 미국도 25.4%이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화성외국인보호소를 찾아 직접 보호외국인들을 만났다. 공식 명칭은 '보호외국인'이지만, 이들은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수감돼 있다.
지난 3일 오후 2시. 기자는 9개월째 경기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돼 있는 M(33)씨를 만나기 위해 면회실에 들어섰다. 긴 복도에 한 평 남짓한 면회실이 늘어서 있었다. 대화 내용이 다 들릴 수 있도록 문은 없거나 활짝 열려 있었다.
M씨가 앉을 자리는 쇠창살에 두꺼운 유리벽까지 겹쳐 가로막힌 공간 너머였다. 머지않아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온 M씨가 수화기를 집어 들고 인사했다. 수감복을 닮은 단체복을 입지 않겠다고 주장해 사복을 입은 것 외에는 교도소와 다를 게 없는 광경이었다.
허락된 면회 시간은 단 20분. M씨는 기자 앞에 앉자마자 "이곳은 보호소가 아니라 던전(지하감옥)"이라고 말문을 열며 "죄인 취급을 받고 있는 이곳 외국인 대부분은 아무런 죄도 없다"고 호소했다. M씨는 "이곳의 상황을 직접 본다면 누구도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이라며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 다른 나라로 보내 달라는 요청마저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 어떤 도움이든 절실하다"고 울먹였다. 약속된 20분이 되자마자 직원이 들어와 면회 종료를 알렸다. M씨는 좀처럼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하다가 직원의 재촉에 못이겨 면회실을 떠났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11월에도 M씨를 면회했으며, 그가 인권 단체에 보낸 편지도 받아 분석했다.
M씨는 본국에서 종교박해를 피해 탈출구를 모색하다가 2017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의 신변보호 요구에 따라 출신국가는 보도하지 않는다.
영어소통이 가능한 그는 그해 3월 홀로 난민 신청을 했는데, 이후 '난민 신청에 사유가 없어서 불허한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M씨는 2019년 서울 출입국・외국인청에 다시 난민 신청을 했다. 당초 2020년 6월 15월이면 난민 인정 여부 결과가 나올 예정이었지만 지난해 1월 15일로 6개월 더 연장되더니 이 역시 불인정됐다. 한국일보는 법무부에 M씨의 난민 불인정 사유를 문의했지만 "개인정보를 포함한 사항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후 M씨에게 돌아온 건 법무부에서 내린 '출국 명령'이었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목숨을 잃을 위험이 컸던 M씨는 출국 명령을 따를 수 없었다. 결국 출국 명령에 강제력이 더해지면서 '강제퇴거명령'이 떨어졌다. M씨는 법무부 측에 "명령에 응할테니 난민 신청을 받아줄 만한 제3국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으나 법무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출입국관리법 제64조(송환국)에 따르면 강제퇴거명령 대상은 국적이나 시민권을 가진 국가로 송환돼야 하지만, 그게 불가능할 경우 본인이 희망하는 국가로 송환할 수 있게 돼 있다.
강제 퇴거 명령에 대해 1주간의 이의 신청 기간이 있지만 M씨는 이 사실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고 한다. 난민법 제5조6항에 따르면 난민 신청자는 난민 인정 여부에 대한 결정이 확정될 때까지(난민불인정결정에 대한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그 절차가 종결될 때까지) 국내에 체류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혼자 대응한 M씨는 소송도 진행하지 못했다. 결국 강제 퇴거 명령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3월 31일 보호소에 구금됐다.
M씨는 "만약 구금되지 않았다면 단체들의 도움으로 제3국으로 갈 수 있는 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가 난민 신청자를 목숨이 위험한 본국으로 보내려 시도한 경우가 또 있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인 카슈미르 출신 독립운동가 사다르씨는 2013년 체포영장이 떨어지자, 여권을 위조해 뉴질랜드로 향했다. 인도와 파키스칸은 독립을 요구하는 카슈미르를 탄압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고, 무장단체 활동을 한 그는 동료들이 주검으로 발견되는 것을 목격했다.
뉴질랜드는 그의 동료가 이미 난민으로 인정받은 곳이었다. 그런데 뉴질랜드로 향하는 경유지였던 한국에서 가짜 여권이 탄로 나 붙잡혔다. 사다르씨는 "뉴질랜드로 보내 달라"고 요구했으나 법무부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만 강요했다.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해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장기간 수감됐고, 단식 투쟁으로 겨우 풀려났다. 이후 이의신청 끝에 난민으로 인정됐다. 그는 지난해 '외국인보호소 인권침해 증언대회'에 참석해, 보호소의 인권유린을 생생히 증언하기도 했다.
한국일보는 법무부에 제3국 송환을 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법무부는 "최근 코로나19 상황 등으로 항공편이 감소하고 각국이 입국 허용을 제한하고 있어 송환에 제약이 많다"고 두루뭉술하게 답변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전에는 제3국 송환이 있었을까. 그동안 난민 신청자들의 제3국 송환요구가 얼마나 있었는지, 이를 들어준 적이 있는지 질의했으나, 법무부는 답변을 주지 않았다.
난민협약 제33조는 '체약국은 난민을 어떤 방법으로도 인종, 종교, 국적,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생명이나 자유를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국경으로 추방・송환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문방지협약 제3조도 '어떤 당사국도 고문받을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는 다른 나라로 개인을 추방·송환 또는 인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국내의 좁은 난민 인정에는 포함되지 못해도) 본국에 못 가는 난민 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강제송환금지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강제송환을 실제 집행하지만 않으면 법 위반이 아니라는 해석에 따라 법무부가 강제퇴거명령에 따른 장기 구금을 진행한다는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기한 없는 장기구금에 절망한 이들을 더 괴롭히는 건 보호소 내의 인권유린이다. 지난해 9월 29일 경기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모로코인 A씨를 손과 발을 뒤로 묶은 '새우꺾기' 자세로 독방에 가둔 사실이 폭로됐다.
11개월째 격리실(독방)에 수감된 비극도 있었다. 화성외국인보호소 방문모임 '마중' 측은 지난달 26일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채 화성외국인보호소 격리실에 11개월째 있던 외국인 Y씨가 최근 정신적 고통을 못 견뎌 변기를 부수고 부상을 입어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 29일에는 청주외국인보호소에 구금돼 있던 중국동포 B씨가 보호소 직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해 갈비뼈가 골절되고 치아가 손상됐으며 치료 과정까지 방해받았다는 폭로도 나왔다.
M씨도 지난해 7월 2층을 지나던 중 열린 문 틈으로 다른 방에 억류돼 있는 외국인들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어 "안녕"이라고 외쳤다가 수갑이 채워진 채 독방에 감금됐다. 외국인들이 '징벌방'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법무부는 외국인보호규칙(법무부령 제927호) 및 외국인보호규칙 시행세칙(법무부훈령 제1242호)에 따라 보호실 내에서 큰 소리로 다른 보호외국인의 휴식 등을 방해하는 등 소란을 피워 ‘특별계호’를 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M씨는 “다른 관(총 5관 30개 호실) 외국인들과의 소통을 일절 금지하는 이유가 납득이 안 되고 규제 역시 무분별하고 과하다”며 “이외에도 부실 급식을 지적하는 등 정당한 항의도 그들 기준에 소란이라고 판단되면 경고장을 수시로 보낸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