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열사 삶 되살려낸 '거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별세에 조문 행렬

입력
2022.01.0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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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도 직접 빈소 찾아 조문
이재명 "어머님의 뜻 가슴에 단단히 새기겠다"
윤석열 "민주주의 회복과 발전으로 보답할 것"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가 9일 별세했다. 향년 82세. 배 여사는 최근 급성 심근경색으로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가, 전날 다시 쓰러져 광주광역시 조선대병원에서 숨졌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 인사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고인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유월의 어머니'였다. 그는 그해 아들 이한열 열사가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후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평범한 주부에서 '거리의 어머니'가 됐던 그는 민주화 시위와 집회가 열리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찾았다. 그는 여느 부모처럼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을 가슴에 묻고 가슴앓이하는 삶을 거부했다. 부당한 국가 폭력에 항거하는 자리엔 늘 그가 있었다. 1995년 아들을 잃은 후유증에 시달리던 남편까지 잃었지만 그는 쉬지 않고 약자들 곁을 지켰다.

생전 그는 "아들 모습 잊지 않으려고 대중 속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2009년 용산 참사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은 것도 그래서였다. 2016년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2017년 세월호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도 그는 유족들을 위로하고 함께 눈물을 흘리며 보듬어 안았다. 그의 광주 집은 대문이 열려 있을 때보다 굳게 닫혀 있을 때가 더 많았을 정도였다.

그렇게 그는 아들의 삶을 되살려냈고, 또 아들의 삶을 살았다. 실제 그는 1998~1999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을 맡아 422일에 걸친 국회 앞 천막 농성을 통해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유가협이 의문사 진상 규명 투쟁을 시작한 지 12년 만이었다. 고(故) 전태일 열사 모친인 고(故) 이소선 여사와 고(故) 박종철 열사 부친 고(故) 박정기씨 등과 함께였다.

배 여사는 이러한 민주화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6월 문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다시는 우리 역사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 당시 모란장을 받던 그는 '서른세 번째 6월 10일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이렇게 외쳤다.

이후 지난해 한 번의 편지를 더 보냈던 그는 2주 전까지도 국회 앞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었다.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모든 자식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을 봐야 편하게 눈을 감을 것 같다."

그랬던 그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별세했다는 비보가 전해지자 광주 지역 시민사회는 슬픔에 빠졌다. 시민들은 하나 같이 "민주화의 어머니를 잃었다"며 침통해 했고,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엔 그를 추모하는 발길이 줄을 이었다.

정치권에서도 애도가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광주 조선대병원장례식에 마련된 배 여사의 빈소를 직접 찾아 조문했다. 문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6월 민주항쟁의 상징인 이한열 열사와 아들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간 배은심 여사의 희생과 헌신이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만들었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오후 늦게 빈소를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평생 자식을 가슴에 묻고 고통 속에 사셨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며 "이제 이 세상은 우리들께 맡기고 편안하게 영생하시면 좋겠다"고 추모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도 페이스북을 통해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이한열 열사와 배은심 여사님의 그 뜻, 이제 저희가 이어가겠다"며 "민주주의 회복과 발전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