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동 책방골목, 재개발로부터 지켜주세요"

입력
2022.01.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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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지키미 활동하는 김성일 혜광고 교사

반세기가 넘게 자리를 지켜온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책방골목이 자리잡은 일대에 재개발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서점 36곳 가운데 8곳이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에는 오피스텔 공사가 한창이다. 이어서 3곳이 건물주로부터 가게를 비워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부산 혜광고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보수동 책방골목 지키미 활동을 펼치는 김성일(35)씨에게 책방골목의 현주소를 들어봤다.

최근 전화로 만난 김 교사는 책방골목이 올해를 넘기지 못하고 통째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면서 재개발 압력이 거세졌다는 이야기다. 임차인인 서점 주인들로서는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김 교사는 "여러 서점이 오피스텔 개발업자들로부터 나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입구와 중앙에 대형 신축 건물이 들어서면 재개발이 더 많이 추진되고 책방골목의 정체성도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방골목이 일반상업지역이고 관광지로 유명한 부평동 깡통시장을 마주보는 점도 재개발 압력을 높였다고 김 교사는 말했다. 그는 "건물주와 서점주들은 20, 30년씩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사이가 돈독한 편이지만 부동산 가격이 크게 뛰면서 건물주는 마음이 흔들리고 서점 주인들도 불안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출판시장 자체의 위기를 말하는 시대에 헌책방들을 살려야 하는 이유가 뭘까. 김 교사는 보수동 책방골목의 기원이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서 전국적으로 얼마 남지 않은 작은 서점들의 생태계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이책, 나아가 헌책을 매개로 문화를 주고받는 공간을 남겨놔야 한다는 이야기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부산의 미래 유산이고 시민들이 함께 지켜나가야 할 공간입니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것을 찾아 작은 서점을 찾는 문화가 생겨나는 상황에서 자본의 논리로만 책방골목을 없애면 안 돼요. 일단 사라지면 복원할 수 없습니다. 책방골목에는 일제강점기 언덕을 깎아서 만든 계단과 축대가 지금도 남아있고 이것들은 근대 문화재의 가치가 있어요. 광복을 맞은 일본인들이 조선을 떠나면서 축대에 두고 간 책들이 책방골목으로 흘러들었는데, 부산이 한국전쟁 피란지가 되면서 책방골목 주변에 야학과 노천학교가 생겼고, 이 과정에서 책방골목이 시작된 것입니다."

책방골목을 보존하려면 더 많은 사람이 찾도록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하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헌책 소비가 위축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유동인구까지 줄어든 상황이다. 서점 주인들의 고령화와 낡은 시설도 고민거리다. 김 교사는 "여론을 모아 책방골목을 지킬 방법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나이 드신 건물주들에게 동기를 마련해 드리는 한편, 재개발을 진행한다면 난개발이 되지 않도록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김 교사는 시민들이 힘을 합친다면 책방골목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이미 시민과 학계가 힘을 합쳐서 보수동책방골목 보존위원회를 결성했다. 위원회와 보수동책방골목 번영회가 지난달 개최한 포럼에서는 정부에 국가 차원의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책방골목을 브랜드로 만들어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커피 무역업체와 협력해 개발한 커피 블렌딩 ‘1884 북스트리트’를 책방골목 내부의 카페에서 판매하고 수익금을 책방골목 운영에 기부하는 방안은 이미 시행 중이다.

"2022년에는 부산시와 협력해 책방골목 버스정류장을 작은시민문학정거장으로 꾸밉니다. 시를 써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 버스 정류장 전광판에 노출되죠. 책방골목을 둘러보면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를 쓰는 문화활동을 구상한 것입니다. 재개발을 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해서 ‘착한 자본’ ‘문화 자본’이 들어와서 문화사업을 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내셔널트러스트처럼 근대문화유산 가치를 보존하는 방식의 개발이 필요합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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