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건강해 보여도 속은 곪아" 2030들의 보디프로필 촬영 이면엔

입력
2022.04.03 09:00
SNS서 유행하는 2030들의 '보디프로필' 도전
전문가들, "인터넷 문화와 운동 열풍 합쳐져"
보디프로필 찍고 난 후 '폭식증' 등 부작용 경험
'성적 대상화' 콘셉트 보디프로필에 대한 우려도

①오전 8시. 대학생 박모(22·여)씨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헬스장을 찾았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뒤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시작했다. 근력 운동 1시간 반, 유산소 운동 1시간은 박씨가 매일 아침 정해 놓은 운동 루틴이었다.

②오전 11시. 집에 돌아와 이른 점심을 먹었다. 푸짐하게 먹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채 닭가슴살과 탄수화물 100g. 거기에 야채 한 주먹 정도를 주로 먹었다. 박씨의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③오후 7시. 아르바이트를 다녀온 후 저녁에는 플라잉 요가와 요가 수업까지 들었다. 운동에 많은 시간을 쏟은 탓에 온라인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는 건 항상 늦은 밤이었다. 하루에 약 5시간. 지난해 5~7월 박씨의 생활에서 운동이 차지한 시간이다.

박씨가 이렇게 혹독한 운동과 다이어트를 한 이유는 바로 '보디프로필 촬영' 때문이었다. 촬영을 위해 두 달 동안 약 8kg을 감량했다. 박씨는 운동과 식단, 촬영 준비를 하며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비싸다고 생각은 했지만 언제 또 해보겠냐는 생각에 매번 손을 떨며 결제했다"며 "헬스장 50만 원, 요가 50만 원, 스튜디오 비용 20만~30만 원에 의상 5만 원까지. 헤어와 메이크업 비용까지 합치면 150만 원 정도 쓴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모(23·여)씨도 지난해 10월에 보디프로필을 찍었다. 3개월 동안 지옥의 다이어트를 견디며 헬스장이 문을 닫는 일요일을 빼고는 매일 강도 높은 운동을 했다. "2주 남았을 때는 울면서 운동을 했다. 먹지도 못하는데 운동은 해야 하니까 정말 힘들었다"는 김씨는 "그렇지만 다시 돌아가도 한 번은 도전해 볼 것 같다. 근데 더 열심히는 못할 것 같다"며 복잡한 마음도 드러냈다. 김씨는 보디프로필 촬영을 마무리한 후에 "지인들로부터 대단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알게 된 친구들에게도 '멋있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SNS 안에서 보이는 첫 이미지가 좋아지는 느낌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SNS에 '보디프로필' 올리는 2030세대

보디프로필은 건강과 운동에 관심이 많은 2030세대 사이에서 문화로 자리 잡았다. 몇 년 전부터 헬스와 운동 열풍이 불며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자신의 '건강한 몸'을 프로필 사진으로 남겨 공유하는 것이 SNS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1일 기준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보디프로필'을 검색하면 319만 개가 넘는 게시물이 나온다. 대부분 2030으로 보이는 일반인들이 자신의 보디프로필과 운동 인증 사진을 공유하는 모습이다. 유튜브에도 촬영 과정을 담은 '보디프로필 브이로그(VLOG, 자신의 일상을 촬영한 영상 콘텐츠)'가 최근까지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보디프로필 전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황인선씨는 "2, 3년 전부터 보디프로필을 찍으러 온 손님들이 많이 늘었다"며 소개했다. 찾아오는 손님들의 연령대가 어떻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고령으로 환갑이신 분까지도 봤지만 대다수는 2030"이라며 "특히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시는 분들을 제일 많이 만났다"고 말했다. 황씨는 "개인 소장 목적도 있지만 아무래도 손님들이 다 SNS에 올리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며 "건강한 몸이 잘 돋보일 수 있도록 사진 보정을 원하신다"고 덧붙였다.

보디프로필이 2030들에게 유행하는 현상에 대해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외모에 대한 관심에 피트니스 문화, 인터넷 문화가 확산하는 현상이 겹쳐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외모에 대한 관심이 과거에는 주로 얼굴에 집중됐다면 운동 열풍이 불며 요즘은 몸매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며 "SNS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타인의 인정과 관심을 받는 게 활발해졌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가 유행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보디프로필 준비하며 운동에 대한 생각 변해"

박씨는 보디프로필을 지금 다시 찍는다면 어떨 거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번쯤은 해볼 만한 경험이지만 두 번은 하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디프로필을 준비하며 건강한 몸과 운동에 대한 가치관이 변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보디프로필을 찍고 난 후 딱 준비했던 기간 만큼 폭식증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보디프로필을 준비하기 전부터 폭식증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고 최대한 조심하려고 했다"면서도 "그런데 막상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급함이 생겨 무리하게 식단을 조절하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씨는 또 "완벽하지 않은 몸에 대해서 강박이 생기는 것 같았다"며 "여유롭게 찍으려고 해도 다른 사람과 계속 비교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겪으며 겉으로는 건강해 보인다고 하는데 속은 곪아터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사진만 바라보고 하는 보디프로필은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박씨는 "마른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하려고 운동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강해졌다"고 밝혔다.

헬스트레이너 김모씨는 "원래 보디프로필이란 건 오랫동안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몸을 조금 더 만들어서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라면서 "운동을 평소에 하지 않던 사람들이 급격하게 다이어트를 하다 보니까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기간에 보디프로필만을 위해 다이어트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며 "건강한 다이어트를 위해선 오랜 기간을 잡고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덧붙였다.


일부 콘셉트에 대한 '성적대상화' 우려도

한편 보디프로필을 찍는 이들이 많아지고 다루는 내용이 다양해지면서 비판도 나온다. '건강'과 '운동'을 강조하던 기존의 사진들과는 달리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콘셉트가 보디프로필에 드러나는 경향을 지적한 것이다. 래퍼 이영지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보디프로필 사진이 화제가 되며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번지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보디프로필을 찍는 건 본인의 자유지만 건강한 몸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속옷 모델처럼 섹시한 포즈를 취하는 연출이 유행처럼 번져서 좀 그렇다"(@jjaayy******)는 의견을 나타냈다. 또 다른 누리꾼도 "예전에는 성별 차이 없이 모두가 속옷 차림임에도 성적인 뉘앙스 없이 건강미에 집중해 촬영한 게 많았는데, 어느 순간 포르노적 구도로 촬영된 것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read****)며 비판했다.

김씨는 보디프로필을 찍으며 "성적 대상화가 싫어서 콘셉트를 정할 때 원래는 속옷 촬영을 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몸이 잘 보이지 않아서 포즈나 표정 같은 부분에서 그런 느낌을 없애려 노력했다"며 "다른 콘셉트에서는 그런 느낌조차 주는 게 싫어서 스포츠 바지를 입어서 상체 근육 위주로 찍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아무래도 (성적 대상화를)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았다. 몸이 보이고 라인이 드러나다 보니 의도하지 않아도 그런 느낌이 나오긴 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전문가들, "SNS의 특성이 상황 왜곡에 영향"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SNS 활용이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이 성적 대상화 논란의 소지가 있는 보디프로필을 보고 그럴 수도 있지하며 넘어가곤 한다"며 "그렇게 생산되는 것들이 늘어나며 문제가 있어도 무뎌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곽 교수는 여성의 범주 안에서 다른 양상이 보이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일부 여성들은 성적 대상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반면 동시에 SNS를 통해 (성적 대상화 콘셉트의) 사진을 직접 올리는 여성들도 있다"며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분위기가 깔리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러한 경향을 '평가'가 만연한 SNS의 특성과 관련 지어 해석했다. "사람들은 SNS에 올라온 보디프로필을 보고 타인의 몸이 좋다, 나쁘다 등의 평가를 계속하게 된다"며 "그러한 평가를 의식하며 건강한 몸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시각적으로 돋보일 수 있는 몸을 보여주는 쪽으로 상황이 왜곡되는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닐까"라고 밝혔다.

김세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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