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바다

입력
2022.01.06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당 내분과 지지율 하락 등 안팎으로 곤경에 처했다.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과 결별하며 선대위 조직을 재편했지만 반전의 계기를 잡을지는 불투명하다. 출마 초기 호랑이 등에 올라탄 기세로 대세론을 만들던 그가 지금은 거친 풍랑에 좌초 위기에 처한 셈이다. 호랑이 등인 줄 알았던 민심이 오히려 그를 덮치는 바다와 같은 형국이다.

□ 민심을 바다에 빗대는 것은 오래된 비유다.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오의해(五儀解) 편에서 공자는 노나라 군주 애공에게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니, 이 물은 배를 띄울 수 있지만 배를 뒤집어엎을 수도 있다. 임금께서 이를 위태롭게 여긴다면 무엇이 위태로운 것인지 알고 계신 것이다”라고 했다. 공자가어는 중국 삼국시대 말기 왕숙이 편찬한 것으로 위서(僞書) 시비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보다 더 앞선 ‘순자(荀子)’가 이 비유의 출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책의 왕제(王制)편에 “백성이 정치에 편안해진 뒤에야 군자의 자리가 편안하다”며 임금을 바다(백성) 위에 떠 있는 배에 비유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 민심이 바다라는 비유는 고대 중국에서만 나온 게 아니다. 로마 제정기에 쓰여진 ‘플루타르크 영웅전’에도 비슷한 일화가 나온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그리스를 구한 영웅인 테미스토클레스가 청년 시절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려 할 때, 그의 아버지가 바닷가에 버려진 난파선을 가리키며 정치가는 민중이 한 번 버리면 저 난파선과 같은 꼴이 된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 민심을 바다, 정치가를 배에 빗대는 것은 정치인들이 민심을 두려워해야 하며 그러지 못하면 위태로워진다는 뜻의 서늘한 경고다. 이번 대선은 민심의 바다를 실감케 한다. 어느 때보다 지지율 등락 폭이 커서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달리 보면, 이는 민심이 그만큼 편안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삶의 여건이 풍요롭다면 누가 정치를 하든, 민심은 평화로운 바다와 같을 것이다. 민심을 두려워만 할 게 아니라 어떤 폭풍우를 만났길래 그토록 출렁이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송용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