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해 여름 제주 서귀포시 산록남로 도로 옆에서 구조된 개 '산록이'입니다. 도로 옆 수풀 같은 자리에서 한 달 이상 오가는 차들을 보며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일상의 전부였습니다. 덩치가 작을 때 채워진 목줄이 점점 목을 조여오고 있었지요. 저를 유심히 보고 구조해 준 시민과 동물보호단체 혼디도랑 관계자, 입양 갈 때까지 저를 돌봐준 임시보호자 덕분에 지금은 캐나다에서 한 가정의 반려견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 구조됐을 때는 낯을 가렸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사람을 따르고, 산책도 잘해 임시보호자로부터 귀여움을 받고, 해외로 입양 갈 기회도 얻었습니다.
제주에는 저처럼 산간지역을 떠도는 개들이 많습니다. 집에서 나와 떠돌이가 된 경우도 있고, 여러 세대에 걸쳐 번식을 하면서 야생에 적응한 개들도 있습니다. 떠도는 개의 수가 늘고, 노루와 가축을 공격하는 피해가 발생하면서 산간지역 유기견을 줄여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는데요.
제주도가 최근 발표한 '중산간 지역 야생화된 들개 서식 실태조사 및 관리방안' 용역결과에 따르면 중산간 지대(해발 300~600m)에 1,626~2,168마리의 개들이 서식하는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이는 중산간 지역에서 포획된 유기견 개체 수와 지역 환경변수를 고려해 확률로 추정한 결과입니다. 또 3개월령 이하 어린 개체들의 수가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용역 연구를 진행한 제주대는 유기견이 '들개화'하지 않도록 동물등록제와 유기동물 입양 활성화, 중성화 확대 등 대책과 현재 중산간 지역에 사는 유기견을 관리하는 방안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는데요. 이들을 줄이기 위한 방안 하나로 유해야생동물 지정이 검토된 겁니다. 이렇게 되면 포획 허가를 받아 총기를 사용해 개를 사살할 수 있게 됩니다.
이에 제주지역 동물단체들은 중산간 지역 개들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하는 것을 반대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생명환경권행동단체 제주비건과 제주 동물권 행동단체 NOW, 행복이네 협회 제주동물권 연구소는 "모든 개는 반려동물임을 잊어선 안 된다"라며 "제주도는 중산간 지역에 버려진 반려동물들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해 총기로 사살하려는 논의를 중단하고 더 이상 그들을 방치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란영 제주동물권 연구소장은 "중산간 지역 유기견 가운데 추위와 배고픔, 질병을 견디지 못하거나 로드킬을 당해 죽는 경우가 허다하고, 사람이 다가가면 도망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며 "사람이 버리거나 방치해 발생한 일인 만큼 사살이 아닌 포획과 순치를 통해 입양을 활성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실제 중산간 지역에 떠돌이 개들이 늘어난 것은 지역 반려견 문화 특성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김은숙 혼디도랑 대표는 "동물등록이나 중성화 수술을 시키지 않은 채 마당에서 개를 풀어놓고 키우고 개가 집을 나가도 찾지 않는 이들이 많다"며 "중산간 지역에 버려진 개들도 구조해보니 순치가 충분히 가능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 제주대는 시민 설문을 통한 응답에서 제주도 반려견이 유기견이 되는 이유는 동물등록제 홍보와 실행 미흡, 동물유기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미비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는데요.
중산간 지역을 떠도는 개들을 포획해 보호하면서 사회화 교육을 시키고 입양을 보내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 겁니다. 그렇다고 개들을 모두 포획해 사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바람직한 해결책도 아닙니다.
동물등록과 중성화 확대 등 반려견이 유기견이 되는 걸 사전에 막는 것과 동시에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육농가의 경비를 강화하고 중산간 지역을 떠도는 개들을 위한 보호소를 만드는 등 지금이라도 이들을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