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에 사체 먹던 개와 고양이들... 동물 학대하는 '애니멀 호더' 급증

입력
2022.02.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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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수집한 뒤 방치하는 '애니멀 호딩'
처벌 근거 있지만 실제 처벌은 드물어
'애니멀 호딩=동물학대' 인식 확산하고
고의성 입증에만 얽매인 법 손질 필요

고양이보호단체 '나비야사랑해'는 지난달 29일 서울 동대문구의 5평짜리 오피스텔 원룸에서 고양이 32마리를 구출했다. 집주인 A씨는 지난달 말 월세를 받기 위해 집을 찾았다가 중성화 수술도 하지 않은 고양이 수십 마리가 곳곳에서 뒤엉켜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해 고양이보호단체에 알렸다.

발견 당시 집 내부는 고양이 털과 배설물로 가득했다. 벽면과 가구도 망가져 도저히 사람과 동물이 거주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고양이들이 근친교배로 낳은 새끼 4마리는 유전질환의 일환으로 알려진 구개열 등으로 끝내 사망했다. 유주연 나비야사랑해 대표는 "이번에 발견된 고양이들은 그나마 상태가 괜찮았던 편"이라며 "조금만 더 늦게 발견했으면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사 직전 강아지… 병 걸린 고양이... 참혹한 애니멀 호딩



반려동물에 집착하면서도 제대로 된 양육에는 무관심한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가 동물을 학대하는 사례가 전국에서 속출하고 있다. 앞서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는 지난해 8월 충남 태안군에서 아사 직전으로 병까지 걸린 개와 고양이 80여 마리를 구출했다. 발견 당시 개와 고양이들은 굶주린 나머지 동물 사체를 먹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동물보호단체 '따뜻한공존'도 비슷한 시기 경기 성남시의 14평짜리 아파트에서 각종 쓰레기 속에 살고 있던 고양이 74마리를 구조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2010년대 중반부터 애니멀 호더에게 피해를 당한 동물들의 구조 활동이 크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애니멀 호딩은 동물학대로 분류되지만, 고의성 입증이 어려워 형사처벌까지 받는 사례는 드물다. 한국일보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동물보호법 위반 검거 및 기소 현황'을 보면 2020년 검거 및 기소 송치 인원은 각각 1,000명과 570명 내외였다. 경찰 관계자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 입건자 가운데 애니멀 호더는 최대 2% 이내인 걸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경찰 추산을 대입하면 수사기관에 입건된 애니멀 호더는 한 해 20명 이하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동물보호단체에선 애니멀 호더가 법망을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탓에 신고조차 단념하게 만들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범죄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고 △동물의 정신적 상해를 파악하기 쉽지 않아 애니멀 호더를 고발해도 무혐의 처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캠페인 전개하고, 법령도 손질해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애니멀 호딩=동물학대'라는 인식을 각인시키기 위한 캠페인부터 벌여야 한다고 제언한다. 유주연 대표는 "애니멀 호딩이 동물학대라는 개념이 아직 사회 전반에 퍼져 있지 않은 것 같다"며 "적극적인 관심이 애니멀 호딩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동물 특성에 맞게 '애니멀 호더 의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짚었다.

애니멀 호더 처벌을 위해 관련법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재언 동물자유연대 변호사는 "동물 소유주가 고의가 없다고 주장하면 수사기관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며 "애니멀 호더로 인해 동물이 심각한 상해를 입는 등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했다면 중과실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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