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5일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단거리 발사체를 쐈다. 새해 첫 무력시위이자, 지난해 10월 19일 ‘미니 잠수함 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발사 한 지 78일 만이다. 그간 대남 메시지를 극도로 꺼려온 북측의 첫 응답이 미사일 도발로 나타나면서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 구상에는 악재가 더해졌다. 이날 남북철도 연결을 염두에 두고 철도착공식 현장을 찾은 문 대통령에게 보내는 북측의 ‘대화 거부’ 메시지로도 읽힌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오전 8시 10분쯤 자강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한 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자강도는 지난해 9월 28일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화성-8형) 시험발사를 진행한 곳이라 추가 시험발사를 통해 기술적 완성도를 과시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북한은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대신해 내놓은 4차 전원회의 결론에서 “현대전에 상응하는 전투기술기재의 개발ㆍ생산을 다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초부터 감행된 북한의 무력시위는 여러 포석을 담고 있다. 도발의 강도는 세지만 속내는 한미의 대북정책 변화를 압박하려는 목적이 커 보인다. 종전선언 호응 대가로 북한은 ‘이중기준과 적대시 정책 철폐’를 꾸준히 요구해왔다.
희망사항은 ‘장기 침묵’을 통해 보다 명확해졌다. 북한은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종전선언 선결 조건을 제시한 뒤 한미의 대화 촉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4차 전원회의에서도 “다사다변한 주변 환경에 대처해 대외사업 부문에서 견지해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한 줄짜리 메시지만 던졌다. “반대급부 없이는 대화도 없다”는 일관적 입장을 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해 확실히 각인시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시점에서 미국에 ‘존재감’을 드러낼 필요성도 생겼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2021년 외교를 결산하면서 북한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최대 당면 위기인 경제난 극복을 위해선 대북제재 완화가 급선무인데, 키를 쥔 조 바이든 행정부를 자극하려면 미사일만큼 효과적 수단은 없다. 단거리 발사체를 쏘며 도발 수위를 조절한 것도 ‘레드라인’만큼은 넘지 않겠다는 의도가 묻어난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미국의 행동변화를 압박하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초부터 진행 중인 북한군 동계훈련과 다가오는 김 위원장의 생일(8일)을 맞아 우수한 국방력을 뽐내 주민 결속을 다지기 위한 내부 수요도 있다. 특히 올해는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광명성절) 80주년과 4월 김일성 주석 생일(태양절) 110주년 등 ‘대형 이벤트’가 예정돼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질 경우 지난해 1월 내놓은 국방발전 5개년 ‘시간표’에 따른 자주국방 명분을 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든 정부는 난감한 입장이 됐다. 미사일 발사는 하필 문 대통령이 새해 첫 현장 일정으로 잡은 ‘동해선 강릉~제진 철도건설 착공식’이 열리기 3시간 전에 이뤄졌다. 무력시위만 없었다면 문 대통령은 남북협력의 ‘상징성’을 담은 이곳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 의지를 부각시킬 수 있었다. 그는 이날 “남북 대화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지만, 의미는 크게 퇴색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번 도발을 애써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이날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에서는 ‘우려’만 표명했을 뿐, ‘유감’ 표현을 자제했다. ‘저강도 대응’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미사일 방향이 우리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아” 도발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 정세의 불확실성은 한층 커질 게 자명하다. 북한이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3월 남측 대선 등 대외 변수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웨이’ 지속 의향을 밝힌 탓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3월에는 한미연합군사연습도 예정돼 있는 만큼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이어갈 확률이 높다”며 “당분간 남북관계의 해빙을 모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